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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전임 감독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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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양의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강철 야구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포수 양의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강철 야구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K리그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을 겸임한다. 감독은 소속팀과 대표팀 훈련을 함께 지휘하기 위해 대표팀을 소속팀 훈련지인 터키 안탈리아로 소집한다. 2주 정도 훈련을 한 뒤 아르헨티나로 이동해 연습경기를 하고, 대회 개막 닷새를 앞두고서야 브라질에 간다.

축구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정이다. 하지만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야구 대표팀에서 일어난 일이다. 1월 개인 훈련을 하다 2월 1일부터 소속팀에서 훈련하던 선수들은 2월 15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컴플렉스로 소집됐다. 2주 정도 훈련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고척돔에서 한 차례 연습경기를 했고, 3월 4일 일본 오사카로 왔다. 6·7일 일본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가진 뒤 9일에 호주전을 치렀다.

소속팀 두산 베어스가 호주에서 훈련했던 양의지는 40일간 시드니~서울~투손~LA~서울~오사카~인천을 이동했다. 대표팀 소집 초반엔 컨디션이 나빴고, 선배인 백업포수 이지영이 양의지를 배려해 투수들의 공을 많이 받았다. 3루수 최정도 몸 상태가 안 좋아 일본에서 치른 첫 연습경기를 결장했다.

이런 스케줄을 감내한 이유는 하나다. 대표팀 사령탑이 프로팀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기 때문이다. KT는 애리조나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KT 뿐만이 아니다. 다섯 팀이 스프링캠프를 꾸렸다. 플로리다주로 간 SSG까지 합하면 여섯 팀이 미국 본토에서 1차 훈련을 했다. 자연스럽게 미국에 캠프를 꾸리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투손 현지 날씨가 나빠 연습경기가 취소되고, 이동 중 비행기 문제가 발생하는 등 불운까지 따랐다.

지난달 23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기 위해 이동하는 이강철 감독. 궂은 날씨 때문에 이날 예정된 kt와의 연습경기가 취소됐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기 위해 이동하는 이강철 감독. 궂은 날씨 때문에 이날 예정된 kt와의 연습경기가 취소됐다. 연합뉴스

WBC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탈락한 첫 번째 이유는 실력이다. 2006년 WBC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해외파만 8명(박찬호·구대성·김병현·서재응·봉중근·김선우·최희섭·이승엽)이었다. 이번 대표팀은 김하성과 토미 현수 에드먼, 2명의 메이저리거 뿐이다. 그나마 혈통을 따져 합류한 에드먼이 없었다면 김하성 혼자였다. 그만큼 선수들의 수준이 낮아졌다.

하지만 호주도 못 이길 정도의 전력은 아니다. 4년 전 프리미어12에선 메이저리거들 없이도 호주에게 5-0 완승을 거뒀다. 한국이나 호주나 당시와 비교해서 엔트리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특히 호주는 데이브 닐슨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이 거의 그대로다.

그때와 다른 건 몸 상태의 차이다. 프리미어12는 KBO리그가 끝난 뒤 한국에서 1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한국 선수들은 시즌 종료 후라 경기 감각이 살아있었다. 이번엔 반대다. 호주리그는 2월까지 진행됐고, 호주 대표팀은 일본으로 모여 전지훈련을 했다.

한국 투수들 상당수는 몸 상태가 안 좋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고우석은 공 1개도 못 던졌다. 양준혁 해설위원은 "우리도 따뜻한 오키나와나 후쿠오카에서 훈련했다면 몸 상태가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만약 전임감독제였다면 일본과 가까운 곳에서 소집됐을 가능성이 높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대표팀은 전년도 우승팀 감독이나 경험이 많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린 2017 WBC에서 1라운드 탈락한 이후 전임감독제를 도입했다. 프로팀 감독들이 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처럼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동열 감독과 김경문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전임감독제는 5년 만에 사라졌다. 2018 아시안게임 이후 국정감사에서 일부 정치권 인사가 대표팀에 대해 수준 낮은 비판을 했고, 올림픽 노메달에 그친 게 결정적이었다. 연봉(2억~3억원)에 비해 대표팀 감독의 역할이 작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국 WBC는 이강철 KT 감독이 총대를 멨다. 이 감독은 2021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등 프로에선 단기전을 많이 치러봤지만, 국제대회 경험은 부족했다.

일부에선 A매치만 1년에 10경기 이상 치르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국제 대회가 적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만 해도 항저우 아시안게임(10월)과 APBC(11월)가 열릴 예정이다. 내년엔 프리미어12가 개최되고, WBC도 3년 뒤 열린다. 올림픽은 2008 베이징 대회를 마지막으로 '핵심종목'에서 빠졌다. 그래서 2024 파리 대회는 야구가 없지만, 2028년 대회는 미국 LA에서 열려 개최국 권한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전임감독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완책도 필요하다. 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2015년부터 전임감독제를 도입한 일본은 매년 호주, 대만, 멕시코 등 다른 나라팀과의 평가전을 연다. 대표팀 붐업, 코칭스태프의 선수 파악, 경기 경험 등 여러 이점이 있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감독은 직접 한국을 찾아와 주요 선수를 파악하기도 했다.

축구대표팀도 꾸준한 A매치를 통해 조직력을 다지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감독이 파악한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일본과의 교류전이라든지 다른 나라 팀과의 친선경기를 자주 가져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실력을 키우는 게 먼저다. 하지만 그만큼 체계적인 대표팀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인프라를 구축할 순 없기 때문이다. 전임감독제가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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