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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채 보증금 갖고튄 ‘부산판 빌라왕’…청년들 78억 날릴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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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부산 ‘오피왕’으로 불린 A씨 소유 오피스텔 에 지난 10일 세입자들의 벽보가 붙어있다. 김민주 기자

부산 ‘오피왕’으로 불린 A씨 소유 오피스텔 에 지난 10일 세입자들의 벽보가 붙어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0일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빌라촌 골목. 이곳에 지난해 4월 준공된 33세대 규모 11층짜리 신축 오피스텔 건물 한 채가 들어서 있다. ‘부산 오피스텔왕’으로 불리는 A씨(31)가 대표로 있는 법인 소유다. 오피스텔 외벽엔 ‘부산판 빌라왕 전세 사기’ ‘사기꾼 빚 떠안은 청년들’이라고 적힌 벽보가 나붙어 있다.

이 오피스텔 전세 세입자 B씨(20대)는 “건물 전체가 지난달 16일 경매에 넘어갔다”며 “낙찰되더라도 (세입자들은) 채권 순위가 밀려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야 할 판”이라고 한숨지었다. 그는 지난해 9월 이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계약 기간 2년, 보증금은 1억원이다. 이 중 8000만원은 중소기업 청년 전세금 대출을 받았다.

B씨가 집을 계약할 땐 A씨 회사 직원이라는 2명이 나왔다. 자신들을 ‘계약 대리인’이라고 소개했다. B씨는 “등기부 등본에서 확인되는 은행 근저당 규모가 53억원에 달했다”며 “하지만 ‘법인 소유 건물 치곤 일반적인 수준’이란 공인중개사의 설명만 믿고 계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근저당 액수에 해당 오피스텔 세입자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도 들지 못했다.

다른 세입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6~11월 입주했다. 입주 초기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평소 5만원 수준이던 관리비가 지난달 8만원 넘게 나오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관리비 인상을 이상하게 여긴 B씨는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가 “A씨 측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그간 A씨가 부담하던 일부 비용이 들어오지 않아 관리비가 높아진 것”이라며 “근저당을 설정한 은행에서 건물을 경매에 내놓을 것이라는 연락도 왔다”고 답했다.

B씨는 이웃들에게 A씨 ‘잠적’을 알렸다. 더욱이 아무도 실제 A씨와 만나 계약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약 대리인이었던 직원들은 “대리만 했을 뿐 관련이 없다” “이미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했다. 계약을 맡았던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지자 공인중개사는 “(A씨가) ‘큰 사기를 치고 잠적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한 뒤 역시 연락이 끊겼다. 보증금 반환 의무를 진 A씨가 나타나지 않으면 B씨 등 세입자들이 돌려받지 못할 금액은 최대 1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A씨는 법인을 통해 오피스텔 등 100여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보유한 서면 오피스텔(63세대 규모)도 같은 문제가 터졌다. 이들 63세대 앞으로 은행 근저당권 80여억원이 잡힌 상태에서 A씨가 사라졌다. 피해 추정액은 60억원에 달한다. 세입자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곽경도 법무법인 상지 대표변호사는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고 A씨를 사기죄로 고소하려 한다. 위험 고지 의무를 소홀히 한 공인중개사들에게도 책임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 변호사는 이어 “과도한 근저당이 잡힌 물건은 전세 계약을 피하거나, 월세를 내더라도 보증금을 낮추는 편이 안전하다. 특히 중개보조인이 수수료 감면 등을 내세워 공인중개사 없는 계약을 유도하면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 뒤를 쫓는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A씨 소유 주택이 더 있는지 확인하며 집중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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