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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보석 아니지만 보석 같죠 반짝반짝 빛나는 '불의 예술' 칠보

중앙일보

입력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영친왕비 도금매죽잠이 보관돼 있어요. 매죽잠은 매화와 대나무 잎으로 장식한 비녀를 뜻하는 말로, 비녀 장식에 있는 대나무 잎은 파랗게 빛나요. 언뜻 보면 보석을 박아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약을 칠한 거랍니다. 또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은제 파란 장도의 손잡이와 뚜껑에는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박쥐가 그려졌죠. 이 또한 유약을 발라 장식했는데, 이런 장식품·생활용품·의례용품은 사극 등에서도 자주 보이는 형태입니다.

칠보는 유리질 유약으로 기물의 표면을 장식한 뒤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기법이다.

칠보는 유리질 유약으로 기물의 표면을 장식한 뒤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기법이다.

그런데 종이도 아닌 금속 표면에 어떻게 이런 장식이 가능했을까요. 그 비결이 바로 유리질 유약으로 기물의 표면을 장식한 뒤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기법인 칠보(七寶)입니다. 칠보는 유약을 바른 기물이 가마 안에서 머무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결과물도 달라지기 때문에 '불의 예술'라고도 불리죠. 나예현 학생기자와 신소이 학생모델이 칠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용산공예관을 찾아 노용숙 칠보기능전승자를 만났어요.

공예관 내부에 있는 공방 안에는 나비 모양 목걸이, 동물 모양 브로치, 나뭇잎 모양 수저받침 등 형형색색 유약으로 칠한 금속 기물들이 가득했죠. 주변을 둘러보던 예현 학생기자가 "칠보라는 한자의 의미를 찾아보니 '일곱 개의 보석'이었어요. 왜 이런 한자를 쓰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맞아요. 일곱 칠(七)과 보배 보(寶)라는 한자를 사용하죠.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처럼 어떤 색이든지 표현할 수 있는 보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조선시대 중기 이후 활발하게 사용된 칠보는 현대에도 장식품을 비롯해 생활용품·의례용품 제작에 자주 이용된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 활발하게 사용된 칠보는 현대에도 장식품을 비롯해 생활용품·의례용품 제작에 자주 이용된다.

칠보는 전 세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공예기법 중 하나예요. 기원전 500년경 그리스 지역의 헬레니즘 금속공예품에서 칠보 장식이 확인되기도 했고, 중국 명나라 시대(1368~1644)에도 칠보로 장식한 다양한 용품들이 제작됐죠. 한국에서 칠보 기법을 언제부터 향유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하지만 7세기 신라시대 분황사의 모전석탑에서 꺼낸 사리장엄구에 포함된 은제 바늘통에 유리질 유약을 녹여 붙인 사례가 발견됐을 만큼 그 역사가 길죠. 장신구는 물론 갑옷·무기, 거울·향로 등 의례용품, 그릇·촛대·수저·시계 등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물에 칠보로 장식했습니다.

"칠보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의 일이에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파란이라고 불렸죠." 중국에서 칠보를 부르던 법랑(琺瑯)이라는 명칭은 중국어로 '화란' 혹은 '파란'에 가깝게 발음하는데, 이 단어가 조선에 전해지면서 파란이란 명칭으로 자리 잡았죠. 파란은 삼국시대의 금으로 만든 장신구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역사가 길어요. "파란 기법에 쓰인 색은 처음에는 파란색 위주였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면 파란색 외에도 짙은 노랑에 가까운 황색, 감색 파랑과 녹색의 중간색인 벽색, 보라색 계열의 가지색 등 네 가지로 발전했죠."

칠보의 올리기 기법을 할 때 필요한 재료들. 유약과 이를 바탕재료에 올릴 붓·막대(죽필) 등의 공구, 작업물을 구워낼 전기가마와 표면을 다듬을 숫돌 등이 필요하다.

칠보의 올리기 기법을 할 때 필요한 재료들. 유약과 이를 바탕재료에 올릴 붓·막대(죽필) 등의 공구, 작업물을 구워낼 전기가마와 표면을 다듬을 숫돌 등이 필요하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사용된 칠보는 1960년대 이후 해외에서 칠보 기술을 배워온 이들에 의해 기술과 재료가 현대적으로 변화했어요. 그리고 왕실이나 소수의 사대부가를 위한 고급품에 주로 사용되던 범위도 넓어져 고급 혼수와 예물·관광기념품 등에도 활용됐죠.

세계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칠보는 그 방법도 다양합니다. 철·동·은·알루미늄·스테인리스·점토·유리 등의 바탕재료에 유약을 바르고 높은 온도에서 굽는 게 기본 방식이죠. 유약의 주성분은 유리질 함량이 높은 석영이고 여기에 녹는 온도가 낮은 붕사·소다 등을 소량 섞어요. 석영은 녹는 지점이 약 1700도인데, 이렇게 하면 1700도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유약이 녹아 굽고 나면 반짝이는 효과가 나죠. 또 각종 금속산화물을 섞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습니다.

노용숙(맨 오른쪽) 칠보기능전승자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칠보의 역사와 개념을 알려주고 기본 기법의 하나인 올리기 기법으로 소품을 만드는 법을 지도했다.

노용숙(맨 오른쪽) 칠보기능전승자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칠보의 역사와 개념을 알려주고 기본 기법의 하나인 올리기 기법으로 소품을 만드는 법을 지도했다.

굽는 온도와 바탕재료의 특성, 유약을 바르는 기법을 달리 활용하면 칠보라는 이름처럼 여러 가지 효과를 표현할 수 있어요. 금속판 위에 금속선으로 문양을 구성하면서 문양의 안과 밖을 칠보 유약으로 채우는 유선(有線) 칠보, 철침이나 누르개로 얇은 금속판을 눌러 무늬를 넣거나 정·망치로 요철을 표현한 뒤 그 위에 유약을 올리는 조금(彫金) 칠보, 고온에서 구워 부드러워진 은박을 이용한 박(箔) 칠보 등이 대표적이죠.

용산공예관에서는 칠보의 과정과 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요. 노 전승자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칠보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이 모여 있는 책상 앞으로 데려갔죠. 소이 학생모델이 "칠보를 하려면 어떤 재료들이 필요한가요?"라고 질문했어요. "바탕재료로는 원하는 쓰임새에 따라 금·은·구리·유리·점토를 사용할 수 있어요. 여기에 올릴 유약과 이때 사용하는 붓·막대(죽필) 등의 공구, 작업물을 구워낼 전기 가마, 작업물의 표면을 다듬을 숫돌 등이 필요하죠."

바탕재료에 유약을 칠할 때는 유약에 물기가 너무 많지 않은지 확인하고, 적정한 두께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바탕재료에 유약을 칠할 때는 유약에 물기가 너무 많지 않은지 확인하고, 적정한 두께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칠보 기법 중 가장 쉬운 올리기 기법을 활용해 목걸이와 브로치를 제작해보기로 했어요. 말 그대로 바탕재료 위에 원하는 양과 두께의 유약을 올리는 것이죠. 창작자의 의도에 맞게 바탕재료를 성형하려면 실톱대·조임쇠·토끼발 등 각종 공구를 활용해야 합니다. 초보자가 하기 어려운 과정이라 노 전승자가 미리 바탕재료를 준비했죠. 책상 위에는 강아지·거북이·원·네모·세모 등 다양한 모양의 바탕재료가 있었어요. 예현 학생기자는 하트 모양 동판으로 목걸이 장식 펜던트를, 소이 학생모델은 새 모양 강철판으로 브로치를 만들기로 했어요.

"작업할 때는 편안한 옷과 머리띠 착용을 권합니다. 긴 머리를 그대로 흘러내리게 두면 유약을 바를 때나 전기가마를 사용할 때 불편해요. 먼저 바탕재료에 칠하고 싶은 유약의 색을 골라보세요. 그런 다음 가루 형태의 유약에 적당량의 풀기가 있는 물을 섞은 뒤, 막대로 조금 덜어서 바탕재료 위에 올리면 됩니다."

칠보는 유약을 섞어 바탕재료 표면에 색을 내는 것 외에도, 가마 안에서 머무는 온도와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표현을 달리할 수 있다. 칠보가 '불의 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다.

칠보는 유약을 섞어 바탕재료 표면에 색을 내는 것 외에도, 가마 안에서 머무는 온도와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표현을 달리할 수 있다. 칠보가 '불의 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다.

예현 학생기자는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짙은 푸른색·하늘색 유약을, 소이 학생모델은 녹색·보라색·하늘색 유약을 막대로 덜어서 바탕재료 위에 올렸어요. 표면에 유약을 고르게 펴 바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죠. 작업 과정을 지켜보던 노 전수자가 "다 칠한 뒤 건조 과정을 거쳐 가마에 구워야 하므로 유약을 너무 두껍게 입히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표면에 바른 유약에 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으면 마른 붓으로 좀 덜어내면 됩니다"라고 조언했어요. 열심히 채색한 끝에 예현 학생기자의 하트 모양 동판에는 짙은 푸른색이, 소이 학생모델의 새 모양 강철판에는 녹색·보라색·하늘색이 내려앉았죠. "이야, 유약이 바탕재료 표면에서 멋지게 마블링이 됐네요."

이제 유약이 마를 때까지 충분히 건조한 뒤 가마 바닥에 직접 닿지 않게 하는 받침대인 가시발 위에 올려 전기 가마에 구워줄 겁니다. 하트 모양 동판은 약 800도, 새 모양 강철판은 약 750도의 온도에서 구우면 돼요. 바탕재료가 달라 굽는 온도도 다른 거죠. 전기가마의 두꺼운 문을 열자 용광로처럼 붉게 달아오른 내부가 보였어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집게로 가시발을 들어서 가마 속에 수평으로 넣은 뒤, 가마 문에 뚫린 구멍으로 칠보 공예품 상태를 확인하면서 굽습니다. "약 1분 20초 정도 굽는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굽는 시간에 따라 유약의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멍으로 계속 관찰하면서 시간을 조절해요."

칠보 기법으로 신소이(왼쪽) 학생모델은 새 모양 브로치, 나예현 학생기자는 하트 모양 목걸이를 만들었다. 바탕재료인 금속과 유약에 열이 가해져 화학적으로 결합한 상태라 잘 손상되지 않는다.

칠보 기법으로 신소이(왼쪽) 학생모델은 새 모양 브로치, 나예현 학생기자는 하트 모양 목걸이를 만들었다. 바탕재료인 금속과 유약에 열이 가해져 화학적으로 결합한 상태라 잘 손상되지 않는다.

가마 안을 살피던 소중 학생기자단이 노 전수자의 도움을 받아 칠보 작품이 얹어진 가시발을 조심스럽게 꺼냈어요. 바탕재료인 금속과 유약에 동시에 열이 가해져 화학적으로 분자결합이 이뤄진 상태라 충분히 식혀야 해요. 뜨거운 온도를 견딘 유약의 표면이 반짝이면서 마치 보석처럼 보였죠. 마지막으로 유약이 발린 표면을 숫돌로 매끈하게 갈아주고, 목걸이용 끈과 브로치용 핀을 달면 나만의 칠보 액세서리 만들기 끝.

이처럼 칠보는 바탕재료를 가공하는 방법과 유약의 활용, 가마 안에서 굽는 시간과 온도 등 매 제작 단계에서 창작자의 의도가 담긴 실험을 통해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어요. 또한 기법에 따라 금속 장신구의 한 부분을 보석처럼 장식할 수도 있지만, 넓은 면적에 유약을 흩뿌려 회화처럼 보이는 작품도 제작할 수도 있죠. 유약을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칠보 장식품의 표면은 미적으로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손상되는 일도 드물어요. 바탕재료가 금속일 경우 장식 효과에 더해 부식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답니다.

취재장소인 용산공예관에 일찍 도착해 전시된 작품들을 구경하는데 예쁜 칠보 작품들이 너무 많아 취재가 더 기대됐어요. 나비 모양 목걸이, 동물 모양 브로치, 나뭇잎 모양 수저받침 등 색깔이 오묘하고 신비로워서 한참을 들여다봤죠. 과거에는 '파란'이란 명칭으로 불린 칠보는 일곱 '칠'에 보석 '보'자를 써요. 유리 재질과 비슷한 유약으로 뿌리거나 바르는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죠. 노용숙 칠보기능전승자님이 만드신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너무 다양하고 아름다웠어요. 게다가 칠보는 깨지지 않는 한 색깔이나 모양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해요. 시간이 지나면 뭐든지 망가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칠보 작품이 더욱 독특하고 특별하게 느껴졌죠. 저는 칠보로 하트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보았는데, 만드는 방법도 쉽고 완성된 작품도 제가 보기에는 너무 예뻤어요. 또,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라 그런지 더 특별했죠. 여러분들도 한번 자신만의 칠보 작품을 만들어 보세요.

나예현(서울 개포초 6) 학생기자

노용숙 칠보기능전승자의 자세한 설명과 가르침을 들으면서 칠보 공예를 체험해 보았어요. 여러 가지 색을 바르고, 열로 익혀서 작은 새 모양의 브로치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금이나 은 등으로만 보석,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금속에 다양한 색을 입혀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선조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즐겼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색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만드는 과정 또한 너무나 즐거웠어요. 친구들에게 공예관에 와서 만들어 보길 권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신소이(서울 일원초 5)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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