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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예산, 미래 복지 쪽으로 돌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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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4.4% 감소하여 25만 명을 밑돌았다. 정부는 효과적 저출산 종합 대책을 새롭게 수립하겠다고 분주하다. 기존 대책 중 효과가 없는 것은 폐기하고, 실효성 위주로 재정립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 16년간 약 280조원의 저출산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고 현재도 매년 40조 원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고 있지만 출생아 수는 반 토막이 되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해 온 정부 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한 것은 기존 대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다. 우선, 기존 저출산 정책이 기대와 다르게 효과가 크지 않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출산장려금, 양육 지원, 육아 휴직 등의 대책이 출산 증가에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최종 자녀 수에는 효과가 미미하다.

280조원 썼지만 출산율 급락
노년층 돌볼 젊은층 부담 늘어
미래용 복지예산 따로 챙겨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또 현금성 지원 대책은 예산 지출 측면에서 효율성이 매우 낮다. 출생아 한 명당 1억원을 주면 연간 출생아 수가 현재 25만 명에서 20%가 늘어나 추가로 5만 명이 더 태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예산은 30조원이 드는데, 이는 추가 출생아 한 명당 6억원이 소요된다. 이는 1억원을 받지 않고도 출생했을 25만 명에게도 똑같이 1억원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출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장려 정책은 젊은 세대의 인식을 왜곡해 출산 의지를 꺾을 수 있다. 출산·육아는 본인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임에도 사회공동체를 위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출산장려금이 이렇게 적은데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는 2030세대의 질문을 받으면 과연 아이를 낳는 것인지, 낳아주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기존 대책의 한계가 명백하기에 이제는 새로운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저출산 현상이 초래하는 근본 문제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 수준이 주는 것은 근본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인구가 적을 때 노동생산성이 낮아지고 경제성장이 늦어진다는 근거는 없다. 중국·인도가 가장 높은 생산성과 성장률을 보이지 않고 있고, 스위스의 1인당 소득이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도 인구가 3000만 명밖에 안 되었던 1970년대 초반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한국을 되돌아보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정부 시스템 붕괴를 우려하는 건 지나치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면 임금 조정을 통한 고령 노동의 유입이나 기계설비 증가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저출산 자체보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젊은 세대가 노령 세대와 비교해 너무 빨리 줄어드는 게 문제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 복지정책의 부실화다. 소득을 벌고 세금을 내는 젊은 세대의 인구가 복지 혜택을 받는 노령 세대 인구에 비해 크게 줄면 정부 복지정책이 재정수지 악화 문제에 직면한다.

저출산 걱정 이유가 복지정책 부실화라고 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도 그에 상응하게 수립해야 한다. 효과 없는 기존 저출산 대책을 고수할 일이 아니다. 인구구조 급변에 따른 복지정책 부실화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미래 복지 지출에 필요한 돈을 납세자가 많은 현재 저축해 두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컨대 국부펀드를 마련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많은 행정적·정치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매년 저출산 예산의 일부를 국부펀드에 적립해 미래 복지정책 지출 비용으로 사용한다면 더욱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 가능할 수 있다.

효과적 정책으로 출산율을 충분히 높일 수만 있다면 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의 경험은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저출산에 의한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가 일으키는 복지 재정 문제를 우회적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직접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제는 증거를 기반으로 효율적 정책 수립을 고민할 시기가 됐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