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포커스

“건보 재정 누수 막되, 소아·분만 등 필수의료는 적극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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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지난달 23일 리셋코리아 건보개혁분과 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필권·신영석 위원, 박민수 복지부 2차관, 박은철·권용진·윤태호 위원. 우상조기자

지난달 23일 리셋코리아 건보개혁분과 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필권·신영석 위원, 박민수 복지부 2차관, 박은철·권용진·윤태호 위원. 우상조기자

“건강보험 제도가 지속 가능하도록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서도 중증·응급, 분만, 소아 등 필수의료에는 적극 투자하겠다.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도 구축하겠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월 23일 열린 리셋코리아 포커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건강보험 개혁 방향에 대해 밝혔다. 건보 재정 누수를 줄이되 필수 의료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각 부처 장·차관과 리셋코리아 위원들이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리셋코리아 포커스는 올해 두 번째로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논의했다.

재정 누수 잡고 국고 지원 강화
불필요한 의료 수요 제한 필요
소득 다양화 보험료 체계 고민
소아·분만 재정 중립 대상 빼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초음파 검사 건보 적용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케어’를 수술대에 올린 상태다. 건보 보장성 강화를 내세운 문 케어 시행 이후 MRI·초음파 검사비는 2018년 1891억원에서 2021년 1조8476억원으로 3년 새 10배가량 뛰었다. 과잉 의료 이용 문제가 심각했다. 신경학적 이상이 없는 단순 두통 환자에 뇌 조영제, 뇌혈관, 특수검사 등 3가지 MRI 촬영을 하고, 소화불량 환자에 복부·심장·초음파 등 6가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등의 사례가 빈발했다. 비급여 진료 급여화에 2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건보 보장률은 2017년 62.7%에서 2021년 64.5%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날 토론에서는 권용진(서울대의대 교수), 김필권(전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이사), 박은철(연세대의대 교수), 신영석(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윤태호(부산대의대 교수) 등 리셋코리아 건보개혁 분과 위원 5명이 묻고 박 차관이 답했다. 위원들은 “향후 4~5년 내 건보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포스트 코로나와 고령화가 맞물려 의료 이용량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제도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필권=고령화로 건보 재정 악화가 우려되는데, 국고 지원을 강화해야 하지 않나.

▶박민수 차관=국민에게 보험료 인상, 기획재정부에 국고 지원 확대를 요구하기에 앞서 보건당국과 보험자(건강보험공단)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 누수를 막는 조치부터 하고 난 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당국 입장에서 국고 지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

▶신영석=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급여 제도에서 선택의원제 등을 도입했으나 실효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차관=의료급여 대상자는 질환자 비율이 건보보다 훨씬 높다. 이들은 급여 기준을 바꾼다 해서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의료급여에서 의료 수요 줄이기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건보 환자의 경우 ‘유도된 수요’가 있는 만큼 지출 제한 정책이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필권=비급여 부분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박 차관=지출 측면에서 비급여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비급여는 의미가 달라졌다. 과거 의료 보장성이 취약할 때 비급여는 과도한 의료비의 주범이었다. 보장성이 높아진 지금 상황에서는 비급여가 신의료기술 도입과 활용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국민에게 과도한 의료비 부담 요인이 되는 비급여는 정부가 지속해서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신영석=현재 국내 발생 소득 40% 이상이 건보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과 기반 확대를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박 차관=소득 중심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지속해서 추진되고 있지만, 모든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할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일시소득보다는 항상소득(정기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최근 항상소득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유튜버의 경우 월 몇십만원 수준으로 벌다가 갑자기 인기를 얻어 몇천만원을 벌기도 한다. 이런 소득에 건보료를 어떻게 부과할지 고민이 크다. 다양한 소득 발생 양태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법을 마련해보겠다.

▶박은철=필수의료를 지원하면서 재정 중립 원칙을 적용할 건가. 소아과나 산부인과는 수요가 줄어 문제가 되는 것이라 수가 가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 지원 같은 ‘플러스알파(α)’가 들어가야 한다.

▶박 차관=소아나 분만에는 재정 중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수가 가산의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소아의료와 관련해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꾸라”고 했다. 정부는 소아나 분만, 외상, 응급 등 필수의료에 추가 투자를 할 계획이다.

▶권용진=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추진한다는데, 환자의 선택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환자가 서울의 좋은 병원에 가는 걸 막기보다는 서울 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나서 지역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박 차관=모든 질환에 대해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추진하는 건 아니다. 일차적으론 심뇌혈관 질환 등 응급질환은 최소한 지역·권역 내에서 골든타임 안에 조치해 생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료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시간을 다투는 질환은 권역 내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 건보의 행위별 수가제도 아래에서는 인구가 줄면 수입이 줄고, 의료 시설 마련이 어려워진다. 외상이나 응급은 의사들이 항상 대기해야 하는데, 인건비가 비싼 의사가 환자를 보지 않고 365일 대기하기는 쉽지 않다. 구조 개혁을 통해 이런 문제를 손보겠다.

▶윤태호=민간의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행 의료공급 구조에서 필수의료 강화와 공공정책 수가가 가뜩이나 취약한 공공병원을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박 차관=공공정책 수가는 공공이냐 민간이냐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그 역할을 하면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관점에서 공공병원이 저소득층 진료와 감염병 대응 등에서 권역 단위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상체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