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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에 뇌가 달린 듯"... POB, 30년만의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 기욤 디옵 호명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30년 만에 내한 공연중인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이 서울에서 새로운 에투알을 호명했다. 11일 2시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POB의 ‘지젤’ 공연에서 알브레히트를 춤춘 24살의 쉬제(솔리스트) 기욤 디옵이 프리미에르 당쇠르(퍼스트 솔리스트)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수석무용수인 에투알로 승급한 것이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승급한 기욤 디옵 [사진 Studio AL, LG아트센터]

파리오페라발레단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승급한 기욤 디옵 [사진 Studio AL, LG아트센터]

POB의 간판스타인 에투알 도로테 질베르와 함께 POB만의 한층 더 로맨틱한 지젤 커플을 선보인 직후다. 커튼콜에 무대에 오른 호세 마르티네즈 예술감독은 관객에게 30년만의 내한공연에 대한 감사 인사 후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들의 삶에는 매우 희귀하고 집단적인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공연 후에 관객들과 공유된다. 그것은 바로 꿈의 실현, 에투알의 지명”이라고 말한 뒤, “오늘 파리 국립오페라단 총감독인 알렉산더 니프는 우리와 함께 할수 없었지만 그의 동의를 얻어 기욤 디옵을 에투알로 호명한다”고 발표했다.

기욤은 2022년 코리페(군무리더)를 거쳐 올해 쉬제로 승급하자마자 프리미에르 당쇠르를 건너뛰고 에투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이번 투어가 그의 알브레히트 데뷔 무대였기에 한국 관객에게 더욱 특별한 순간이 됐다.

에투알 승급에 동료와 관객들에게 축하받고 있는 기욤 디옵. 유주현 기자.

에투알 승급에 동료와 관객들에게 축하받고 있는 기욤 디옵. 유주현 기자.

POB는 해외 투어가 드문 단체이기에 투어 공연에서 에투알을 호명하는 것부터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프리미에르 당쇠르를 건너뛰고 곧바로 에투알로 직진하는 '사건'을 30년만의 한국 공연에서 일으켰으니 우리 관객들로선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승급한 기욤 디옵 [사진 Studio AL, LG아트센터]

파리오페라발레단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승급한 기욤 디옵 [사진 Studio AL, LG아트센터]

에투알에 호명되자 기욤 디옵은 눈물을 흘리며 파트너 도로테 질베르와 호세 마르티네즈 예술감독 등을 부둥켜 안고 기쁨을 나눴다. 앳된 소년에 가까운 외모의 발레리노가 기쁨을 감추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니 관객들도 다함께 울컥하며 뜨거운 축하를 보냈다.

기욤 디옵은 이번 투어에 대타로 주역을 맡아 행운을 거머쥐었기에 의미가 더 남다르다. 원래 해당 공연에 도로테 질베르와 함께 캐스팅됐던 에투알 위고 마르샹이 갑작스러운 무릎 부상으로 불참하게 됐고, 대신 POB의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던 기욤 디옵이 캐스팅됐다. 그는 12살이던 2012년 파리오페라 발레학교에 입학해 2018년 POB에 입단한 후, 2021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처음 주역 데뷔를 했을 때부터 이미 차세대 스타의 등장을 예감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었다.

막이 오르자 ‘급이 다른’ 기럭지로 첫 등장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어린 나이와 앳된 외모에도 15살 이상 연상의 지젤인 도로테 질베르와 알콩달콩 로맨스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긴 다리로 무대를 휘저으니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의 무대가 좁아보일 정도였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승급한 기욤 디옵 [사진 Studio AL, LG아트센터]

파리오페라발레단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승급한 기욤 디옵 [사진 Studio AL, LG아트센터]

압권은 2막이었다. 처녀 귀신 윌리들의 마법에 빠져 죽도록 춤춰야 하는 알브레히트의 시그니처 장면에서다. 공중에서 양발을 앞뒤로 교차하며 ‘깡총깡총’ 튀어오르는 동작을 수십번 반복하는 고난도 기술인 ‘앙트르샤 시스’를 놀랄만한 탄력과 리듬으로 구사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열렬한 환호를 터뜨렸다. 마치 “발레 종가 POB의 원조 ‘지젤’의 맛은 이런 것”이라고 웅변하는 듯한 퍼포먼스였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기욤 디옵의 앙트르샤는 경이로움의 최고봉이었다. 매끈하고 유연한 근육이 만들어낸 점프력은 '무용의 신'이라 불리는 바슬라브 니진스키의 환생을 떠올렸다"면서 "POB에 입단 5년만에 에투알이 된 경우는 몹시 드문 경우다. 더욱 중요한 건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 박세은이 화제가 됐듯 최초 흑인 에투알로 기록됐다는 점이다. 문화다양성의 결과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정옥희 무용평론가도 “기욤 디옵은 허벅지에 뇌가 달린 듯한 무용수다. ‘앙트르샤 시스’에서 정확한 발동작과 시원시원한 도약이 돋보였다”면서 “알브레히트 역을 맡기에 너무 앳된 느낌이었지만 이를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끌어올려 캐릭터를 해석했다. 모순적인 귀족보다는 철부지 막내도령 같은 알브레히트로서 원숙한 지젤과 조화를 이루었다”고 평했다.

7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기욤 디옵. [사진 LG아트센터]

7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기욤 디옵. [사진 LG아트센터]

호세 마르티네즈 예술감독은 이번 승급에 대해 “기욤은 극도로 재능있고 고도의 테크닉과 함께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기에 에투알로 호명했다”면서 “그는 이미 많은 주요 배역을 춤추면서 훌륭한 파트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고 전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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