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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하더니 '룸살롱' 다 먹어치웠다…길바닥 전단지 킬러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노면 청소 로봇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병준 기자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노면 청소 로봇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병준 기자

 ‘24시 셔츠룸’ ‘20대 무한 초이스’ 형형색색의 불법 유흥업소 전단이 깔려 있던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도로. ‘야쿠르트 아줌마’의 전동카트를 연상시키는 주황색 카트가 ‘웅’ 소리를 내며 지나가자, 지나간 길에 놓여 있던 전단 수십장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구겨지거나 찢긴 전단도 예외 없이 차량 앞에 달린 흡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흡입자의 정체는 서울 강남구청이 불법 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도입해 시범 운영하고 있는 ‘불법 전단 최종병기’ 노면 청소 로봇이다.

이 카트형의 로봇은 길이 230㎝에 폭 106㎝, 높이 165㎝, 무게 300㎏로 넓고 좁은 도로를 최대 시속 7km로 오갈 수 있다. 로봇 정면 하단에 달린 원형 모양의 브러시 두 개가 쓰레기를 가운데로 모으면, 그 위에 달린 흡입구가 초속 20~25m의 세기로 쓰레기를 빨아들이는 식이다. 차량 옆에는 길이 3.5m에 반경 15㎝의 청소용 호스가 연결돼 있어 차량 사이 좁은 틈이나 화단 등도 청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탑승해 조종하지만, 리모컨으로 무선 조종하거나 자동으로 작업자를 좇아가게 할 수도 있다. 시간당 청소 면적은 약 3000㎡. 한 대당 가격은 3300만원에 달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시범운영 결과) 대형 청소차가 들어가기 어려운 이면도로나 상가 등 밀집지역에서 선정적 불법 전단이나 담배꽁초나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었다”며 “올해 안으로 6대를, 2024년까지 14대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수억 장 전단…로봇, 번호 마비 기술 도입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일대 길거리에 '셔츠룸' 전단지가 뿌려져 있다. 사진 마포구청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일대 길거리에 '셔츠룸' 전단지가 뿌려져 있다. 사진 마포구청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불법 전단과의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불법 전단을 통한 유흥업소 등의 영업을 원천 차단할 신기술을 속속 도입하면서다. 서울 강남구와 동대문구 등 전국 약 70개 지자체와 전국 258개 경찰서에서 운영 중인 ‘대포 킬러’ 자동 경고 발신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자동 경고 발신시스템은 불법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를 무력화하기 위해 2017년 서울시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불법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3초에 한 번씩(일반 불법 옥외광고물 업소의 경우 5~20분에 한 번씩) 계속 전화를 걸어 해당 번호를 통화 불능 상태로 만든다. 전화를 받으면 “즉시 불법 광고 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경고 멘트가 재생되는 식이다. 업소가 수신을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어 다른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현행법상 직접 손으로 나눠주거나 적법한 배부시설을 통해 나눠주는 게 아닌, 도로에 뿌리거나 차량 등 창문에 끼워놓는 전단은 모두 불법이다. 매년 전국 도로에 뿌려지는 불법 전단은 수억 장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만 의정부시에선 불법 전단 517만개가, 성남시에선 502만개가 단속됐다. 전단을 살포하면 경범죄처벌법상 광고물 무단부착으로 10만원 이하의 벌금, 음란 및 퇴폐성 전단을 제작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불법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를 대상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 통화 불능 상태로 만드는 '대포 킬러' 자동경고 발신시스템. 사진 나루씨앤씨

불법 전단에 적힌 전화번호를 대상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 통화 불능 상태로 만드는 '대포 킬러' 자동경고 발신시스템. 사진 나루씨앤씨

단속 회피술도 진화…대포폰 쓰고 ‘고액 알바’ 유인

 지자체들이 신기술 도입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건 단속만으론 불법 전단 배포를 막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유흥업소나 대부업체 등이 불법 전단에 대포 번호를 적어놓고,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 전단을 뿌리는 등 단속을 피하는 수법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전단지 번호로 전화를 걸면 ‘어디 계시냐’고만 물어본다. 절대 위치를 알려주지 않고 손님을 데리러 온다”며 “전단지에 적힌 번호는 대부분 조회가 안 되는 대포 번호”라고 했다. 다른 구청 관계자도 “전단을 뿌릴 사람은 (업체들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간단한 고액 알바라 속이고 텔레그램 등으로 20대 초반을 주로 접촉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8시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에 불법 전단지 단속을 나온 마포구청 직원이 과거 전단지가 뿌려졌던 지역들을 확인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 8일 오후 8시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에 불법 전단지 단속을 나온 마포구청 직원이 과거 전단지가 뿌려졌던 지역들을 확인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자체 관계자들은 “단속도 강하게 하고 있지만, 신속히 청소하거나 번호를 무력화해 영업 효과를 없애는 게 불법 영업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포구청은 단속 현장에서 붙잡은 불법 전단지 배포자 약 10명을 옥외광고물법 위반으로 지난 6일 경찰에 고발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현재 통신사 협조를 구해 불법 전단지 번호 명의자 4명에 대해 신상을 파악한 상태로, 이달 안에 처분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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