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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긴축 공포에 증시·원화 하락…한은도 금리 또 올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다시 매의 발톱을 드러내며 금융 시장이 요동쳤다. 미국의 긴축이 ‘더 높고 오래 갈 수 있다(higher for longer)’는 우려에 원화가치는 미끄러지고, 국내외 주요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AP=연합뉴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22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321.4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가도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28% 하락한 2431.91로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618억원, 8199억원을 순매도했고, 개인이 홀로 9430억원을 순매수했다.

앞서 미국 금융시장도 휘청댔다. 이날 뉴욕증시 3대 지수인 다우(-1.72%)와 나스닥(-1.2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1.53%) 등이 일제히 하락했다. 단기 금리 변동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5%를 넘어섰다. 2년물 금리가 5%를 넘어선 건 2007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시장이 몸살을 앓은 건 파월이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긴축과 관련해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다. 파월은 “경제 지표상 더 빠른 속도의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며 “최종 금리는 지난 12월 전망치보다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파월의 매서운 입에 긴축의 공포는 커졌다. 당장 Fed가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이 아닌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늘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이 예측하는 빅스텝 가능성은 8일 오전 1시 50분 기준 71.2%로 지난 6일(31.4%)보다 배로 높아졌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Fed가 2월에 이어 3월에도 베이비스텝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파월이 지난달 FOMC 후 “디스인플레이션(물가오름세 둔화)이 시작됐다”며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강하게 시사한 탓이다.

하지만 Fed가 이번 달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며 긴축 종착점도 더 멀어질 전망이다. 시장은 당초 Fed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점도표에 따라 올해 말 최종금리 수준을 연 5~5.25%로 점쳐왔는데, 5.5~5.75%가 대세가 된 분위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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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이 입장을 바꾼 건 금리 인상에도 좀처럼 식지 않은 경기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끈적한 물가 때문이다. Fed가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는 지난 1월 1년 전보다 4.7% 올랐다. 지난해 12월(4.6%·전년동월대비)보다 오히려 상승 폭이 커졌다. 지난 1월 비농업 신규고용이 전달보다 51만7000명이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등 고용 시장 상황도 탄탄하다.

긍정적인 경기 흐름이 이어지며 물가가 빠르게 내려가지 않는 탓에, '인플레 파이터'인 Fed가 강공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리서치회사 SGH 매크로 어드바이저의 팀 두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Fed가 경착륙을 유도하지 않고는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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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가 긴축 강공 노선을 이어갈 태세에 국내 증시와 원화값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Fed가 금리를 더 높게 올리면 달러의 값이 올라가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주가 상승을 환율이 갉아먹을 수 있다.

실제로 원화는 지난해 4분기 Fed 발 긴축 속도전에 달러당 1400원대로 추락하는 등 다른 통화에 비해 하락 폭이 컸다. 이날 파월의 강 펀치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지난 6일 104.24에서 7일 105.6으로 치솟았다.

뉴욕 웰스파고의 브렌든 메케나 이머징마켓 전략가는 “파월의 발언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매파(통화 긴축)적이었고, 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인도네시아 루피아와 원화 가치는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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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긴축 속도 완화를 선택한 한국은행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1867조원에 이르는 가계 빚에 고금리 여파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지며,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다만 한·미 금리 차가 예상보다 더 벌어지게 되면 한은도 추가 금리 인상을 선택지에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5%로 미국(연 4.5~4.75%)과 상단 기준 1.25%포인트 차이가 난다.

Fed가 3월 FOMC에서 빅스텝을 밟으면 두 나라의 기준금리 차는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그동안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미 금리 차가 원화가치의 절대적 변수는 아니라는 입장이었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기준금리 정점에 대한 기대가 한국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정당화할 만큼 높아졌다"며 "한은도 오는 4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관건은 FOMC를 앞두고 발표되는 미국 각종 경제 지표다. 고용 지표(10일)와 소비자물가지수(CPI·14일) 등이 발표된다. 미래에셋증권 김석환 연구원은 “타이트한 고용 상황이 서비스 물가의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인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미국 고용 지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고용이 얼마나 빠르게 둔화하는 지가 (긴축의 방향을 가르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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