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래 세대 위해 미뤄선 안돼" '방폐장 설치' 경험자의 조언

중앙일보

입력

경북 경주 월성원전 내에 마련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전경. 연합뉴스

경북 경주 월성원전 내에 마련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전경. 연합뉴스

국내 방사성 폐기물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주요 원전의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점은 7~8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주민 반대 속에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확충만 시동을 걸었다. 근본 대책인 영구처분시설은 아직 국회의 특별법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외국은 방폐물 처리에 앞서간다. 핀란드는 2025년부터 영구방폐장 운영을 시작하고, 프랑스·스웨덴도 15~25년 내 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지지부진한 국내 로드맵에 답은 없을까. 방폐물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프랑스 방폐물관리청(ANDRA)의 파스칼 끌로드 르베르 박사는 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위해 안전한 영구처분시설을 미뤄선 안 된다"면서 "방폐장 설치엔 국민 동의가 제일 중요하다. 정보 공유와 소통이 이를 풀 열쇠"라고 밝혔다.

국제기술전문가(ETI)인 그는 프랑스의 고준위 방폐물 시설인 씨제오(Cigéo) 프로젝트 부국장 등을 역임했다. 방폐장 안전 관리 등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 지난해 연말부턴 사용후핵연료 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에 파견돼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

프랑스 방폐물관리청(ANDRA)의 방폐물 전문가인 파스칼 르베르 박사. 사진 본인 제공

프랑스 방폐물관리청(ANDRA)의 방폐물 전문가인 파스칼 르베르 박사. 사진 본인 제공

파스칼 박사는 "미래 세대를 보호하려면 사용후핵연료의 안정적인 처리가 필수다. 이를 지하 깊은 곳에 수십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게 과학적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설 중 하나인 프랑스 라아그(La hague)의 중간저장시설에서도 방사능 유출 사고는 없었다"고 시설 안전성에 대해서는 자신했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 운영을 시작으로 원전 역사가 40년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 처리만큼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파스칼 박사는 우선 원전 내 저장 시설이 포화를 앞둔 만큼 이 문제부터 적극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봤다. 남은 7년여 동안 충분히 임시저장시설을 지을 수 있지만,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시간 압박 속에 결정을 내리는 건 좋지 않다. 더는 의사 결정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임시저장시설은 단기적 대책이다. 파스칼 박사는 "2050년까지 한국이 영구처분장 등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술을 빠르게 보여주면 세계 원전시장 경쟁서도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영구처분장 설치를 위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통과를 강조한다. 윤종일 카이스트(KAIST) 원자력·양자공학 교수는 "국회가 폭탄 돌리기 식으로 법 통과를 미루면 국민 신뢰만 깎아 먹게 된다"고 짚었다.

프랑스 방폐물관리청(ANDRA)가 운영하는 프랑스 동부 뷔르의 지하 연구소 복도를 걷는 직원. AFP=연합뉴스

프랑스 방폐물관리청(ANDRA)가 운영하는 프랑스 동부 뷔르의 지하 연구소 복도를 걷는 직원. AFP=연합뉴스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또 다른 허들이 있다. 국민이 민감해하는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이다. '수용성'을 얻기 위해 파스칼 박사는 안전·환경 보전·국민 동의를 3대 원칙으로 내세웠다. 방사능 유출 위험 없는 최고의 안전 기준을 지키고,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그는 국민 동의에 방점을 찍었다. "국민 우려는 당연한 만큼 모두 해소돼야 한다. 국제적 경험을 보면 투명한 정보 제공과 의견 수렴이 고준위 방폐물 관리 프로그램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이미 동북부 뷔르(Bure) 지역에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마련했다. 90년대 해당 사업이 시동을 걸 때부터 주민이나 시민사회와의 활발한 소통이 이뤄진 덕이다. 파스칼 박사도 투명하고 적극적인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특별법 논의에도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이다.

그는 "국민과 지역 주민에 꾸준히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공청회 등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의견을 모았고, 현장 방문도 받았다"면서 "민주 사회에서 일부 시민의 반대 의견은 자연스럽다.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높은 기술 전문성을 갖춘 만큼 민주적 감독 절차가 보장되면 사용후핵연료를 제대로 관리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