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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호칭 범죄, 호칭 인플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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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난 아줌마라는 소리가 듣기 싫은가.

지난 3일 오후 수인분당선 열차 안에서 30대 여성이 ‘아줌마’라는 말에 기분이 나빠서 흉기를 휘둘러 3명을 다치게 했다는 기사를 보고 든 생각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고작 호칭 때문에, 혹은 호칭이 도화선이 돼 발생했다. 30대면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릴 수도 있는 나이다. 하지만 이 여성은 아줌마를 멸칭(蔑稱)으로 받아들여 큰 죄를 범했다. 사회적 호칭이 삐걱거릴 때 만들어진 균열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넘어 물리적 위험이 된 경우다.

호칭 스트레스는 오용에서 시작된다. 노인이 많이 찾는 정형외과나 한방병원에선 환자를 아예 ‘어머님’ ‘아버님’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존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일부는 좋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지 않은가. ‘OOO씨’ 혹은 ‘환자’라고 해야 마땅하다. 식당 등에서 영혼 없이 남용하는 ‘이모’ ‘삼촌’ ‘언니’도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쁠 수 있다. 누가 봐도 연장자로 보이는 손님이 자신보다 어린 종업원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비하적 호칭, 틀린 호칭도 기분 나쁘지만, 과한 호칭도 부담스럽다. 멸칭 범람과 호칭 인플레가 동시에 벌어지는 희한한 시대다. ‘손님’도 충분한데 ‘고객님’이 훨씬 많이 쓰이고 있다. 이젠 일부 정부 기관까지 ‘민원인’ 대신 고객님을 쓴다. ‘당선자’와 ‘당선인’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당선자에서 특별히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놈 자(者)가 비하적이라는 이유로 당선인으로 바꿔 쓰고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기자’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가수’는 얕잡아보는 말이라 ‘아티스트’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에선 헛웃음이 나온다.

호칭 스트레스 없애기 첫걸음은 상황과 관계에 따라 정확하게 부르는 것이다. 옆집 아이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반갑지만, 공공장소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른이 아줌마라고 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아무 데서나 유사 가족 관계로 엮는 언어 습관만 덜어내도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이름을 모르면 어쩌냐고 할 수 있다. 그 불편함, 물론 안다. 그렇다고 그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리고 이럴 때를 위한 마법의 말이 있다. 바로 “저기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