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예술 능력 뛰어난 AI 시대, 인간다운 삶은 뭘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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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가톨릭 성직자는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서약하고,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집배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편물을 배달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 심리학자들이 평생 스스로 다짐하는 건 뭘까? ‘오직 인간만이 ○○한 동물이다’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많은 연구를 해도 오직 이 한 줄의 문장만을 사람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의 말이다. 실제로 수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을 채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언어를 쓰는’ ‘도구를 사용하는’ 같은 단어들이 들어간 문장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고심 끝에 내놓은 이런 ‘역작’이 오래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어 구사만 해도 그렇다. 상당수의 동물들이 인간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언어를 구사한다. 고래들은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을 정도이고 리듬이 있는 노래까지 부른다. 심지어 이런 노래들이 유행을 타기도 할 정도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주장한 학자들이 ‘언어’ 앞에 ‘복잡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유일한’이라는 의미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도구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침팬지를 살펴보니 그들 역시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딱딱한 나뭇가지나 풀 줄기를 꺾어 다듬은 다음, 흰개미 굴에 넣어 그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이뿐인가?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도 나뭇가지를 다듬어 병 속에 있는 벌레를 꺼내 먹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가질까? 학자들 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이런 내용이 금방 수용되는 걸 보면 상당히 공감한다는 뜻인데 말이다.

‘○○’에 들어가는 단어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우리와 98.4%가 같다는 침팬지를 강하게 의식하는 한편, 그들과는 다른 유일한 존재라는 걸 강조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뇌과학자 이케가야 유지의 말처럼 우리는 대체로 침팬지는 하지 못하지만 사람은 할 수 있는 것, 이걸 인간다움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고 하는 창조·예술·배려 등이 대표적이다. 침팬지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하게 배어 있다.

실제로 누군가가 우리에게 ‘강아지처럼 생겼다’고 하면 ‘귀엽게 보이나 보다’ 라고 생각하지만 ‘침팬지처럼 생겼다’고 하면 어떨까? 가만히 있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했다 해도 욕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변의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존재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성향이 강한데, 이걸 침팬지와의 차별화에 투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침팬지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안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전에는 동물과의 비교(짐승만도 못한)를 통해 인간다움을 정의했고, 그 이전, 그러니까 문명의 태동기에는 문명 바깥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그렇게 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은 문명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개가 짖는 소리(바르바르 barbar)로 치부했다. 그들을 그런 수준으로 여겼던 것이다. 현재 영어에 남아 있는 야만(barbarism)이라는 말 역시 여기서 나왔는데, 그들에게 야만인(바바리안 barbarian)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 너머에 사는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아리 투르넨, 마르쿠스 타르타넨, 매너의 문화사). 이렇듯 인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차별화(사실은 우월함)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챗GPT 같은 AI가 ‘○○’에 해당하는 것들을 아주 잘, 아니 어떤 건 우리 인간보다 더 잘 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언어 구사는 말할 것도 없고, 글쓰기나 그림 같은 창조와 예술 능력에 ‘배려심’까지 갖췄다. 상담 챗봇은 24시간 내내 하소연을 해도 친절하게 다 받아준다. 권력을 탐내고 질투까지 하는 걸 보면 인간만의 것이라는 감정 영역에까지 다가선 듯하다.

단순한 학습과 모방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지능 역시 진화를 거듭할 게 분명하니, 이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 인간의 고유한 특성, 그러니까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는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한 것, 그러니까 정리나 요약, 그리고 시키는 것을 처리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모르는 것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우리는 반대다. 만약 이 글을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내용으로 썼다면 여기까지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지 않아도 뻔하다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 궁금해하고 귀를 쫑긋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그래서 행간(行間) 같은 숨어 있는 뜻이나 통찰을 할 수 있지만 AI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까 AI는 아는 것에 강하고, 우리는 모르는 것에 강하다. 앞으로 이런 능력을 갖춰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새로워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갈수록 알 수 없는, 참으로 모호한 세상이 되고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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