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심 격변의 시대, 질주해도 흔들림 없는 치타의 눈 필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4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서광원 칼럼

서광원 칼럼

세상엔 믿기지 않는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먼 곳으로 떠난 개가 혼자 수백, 수천 ㎞를 달려 옛 주인에게 찾아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후각 능력이 워낙 좋아 ‘개코’라는 말까지 있긴 하지만 차를 타고, 그것도 장시간 이동한 거리를 과연 후각만으로 찾아오는 게 가능할까? 사냥개들도 마찬가지다. 사냥감을 쫓아 숲 속을 멀리 뛰어간 후, 간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가로질러 오기도 한다.

사냥개 33%, 전혀 새로운 길로 원점 복귀

2020년 체코 생명과학대 카테리나 베네딕토바 연구팀은 사냥개 27마리에 초소형 광각 캠코더와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한 후, 3년 동안 622회에 걸쳐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숲으로 개들을 데려간 후, 주인을 찾아가게 했다. 그랬더니 이 가운데 절반 이상(59.4%)이 이동한 경로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나머지 3분의 1이 넘는 개(33.2%)들은 달랐다.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경로로 왔다. 후각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거리는 수백 미터 정도였지만 숲 속이라 시야가 확보되는 것도 아니었고 바람도 불지 않았으며 청각적인 단서도 없었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76.2%)이 남북 방향으로 20m 정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후, 방향을 잡았는데, 이들은 그렇지 않은 개들보다 훨씬 빠른 경로로 주인에게 향했다. 연구팀은 이들이 지구 자기장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나침반의 바늘이 남북 방향을 향하듯, 이들 역시 지구 자기장을 어느 정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 이런 식으로 방향을 가늠한 후 이동했다는 것이다.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철새들이 대륙을 가로질러 날아 가고, 바다거북이 수천 ㎞의 바다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듯 말이다. 이 연구의 교신저자인 하이넥 부르다 교수는 2013년 개들이 배설할 때 빙빙 도는 이유가 지구 자기장을 향하는 자세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도 있다.

이들 동물들이 기준으로 삼는 지구 자기장은 지구 내부에 있는 외핵에서 생기는 것인데, 이곳의 대류현상에서 만들어지는 전류가 지구를 둥글게 감싸는 현상이다. 마치 막대자석 주위에 쇠가루가 둥글게 늘어서듯이 말이다. 지구 자체가 만드는 이런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으니 지구가 소멸하는 날까지 방향 감각만큼은 걱정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우주 만물이 그렇듯, 이 자기장 축도 주기적으로 변하는 까닭이다.

이 축은 20만~30만 년마다 한 번씩 자리를 바꾸는데 어느 정도 흔들리거나 이동하는 정도가 아니다. 자(磁) 북극이 자남극이 되는, 그러니까 지금과는 완전히 반대로 자리바꿈을 한다. 어쩌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 것이 지구가 생긴 이래 이미 200~300회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지자기(지구 자기) 역전이라고 하는데 가장 최근엔 78만여 년 전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왜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 확실한 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조차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질 텐데,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 4만 2000년 전쯤 ‘잠시’ 있긴 했다. 당시 지구의 자북극이 500여 년 동안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이후 250여 년 동안 제자리로 돌아갔는데, 이 때문에 자기장이 현재 수준보다 약 6% 정도 약해졌다.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을 막아주는 등 보이지 않는 방패 역할을 하는 자기장이 약해지다 보니 재앙은 필연적이었다. 대량의 자외선이 쏟아지는 건 물론이고, 호주 대륙에서는 대부분의 호수가 말라버려 수많은 거대 동물이 멸종했다. 고대 인류가 남긴 동굴 벽화들도 이때쯤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동굴 생활이 길어진 결과일 것으로 추측한다. 묘하게도 네안데르탈인도 이때쯤 멸종했다.

우주 방사선 막는 ‘방패’ 약해져 인류 재앙

중심축 역할을 하던 것이 변하면 이렇듯 세상 모든 것이 흔들린다. 이를 기준으로 짜여 있던 질서가 와해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요즘 날마다 경험하고 있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지자기 역전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중심이 복합적으로 변하다 보니 정신이 없다. 제조업 중심은 서비스 중심으로, 공급자 중심은 고객 중심으로, 오프라인 중심은 디지털 중심으로 거의 완전히 자리바꿈을 하며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꿈쩍 않을 것 같던 조직 문화 역시 코로나19 3년을 거치며 급류 같은 변화를 겪고 있고 말이다. 가정에서는 이미 중심 이동이 시작된 지 오래다. 아버지에서 엄마로, 그리고 이제는 자녀 쪽으로. 중심 공간 역시 안방에서 거실로, 그리고 주방으로 바뀌면서 관련 시장 역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육상동물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치타는 질주하는 동안 머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머리가 흔들리면 눈이 흔들리고, 그러면 목표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된 게 아니라 진화를 통해 삶에 장착한 것인데, 빨리 달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신없이 몰아칠 시대의 파도를 헤쳐가야 할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능력이다. 흔들리는 세상을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봐야 하니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