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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얼굴에 눈이 없다…10년째 이런 초상화 그리는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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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없으면 그림 속 독립운동가가 김구 선생인지 이육사 시인인지 구분 못 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독립운동가 유화를 그리고 있는 주환선 작가. 사진 주환선 작가

독립운동가 유화를 그리고 있는 주환선 작가. 사진 주환선 작가

‘독립운동가 초상화가’로 알려진 주환선(43) 작가는 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리는 아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눈동자 없는 초상화 “마주 보기 죄송”

충남 천안에 작업실을 둔 주 작가는 2013년부터 10년째 독립운동가 얼굴을 초상화로 그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독립운동가 160여명 얼굴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김구 선생 등 유화로 작업한 독립운동가 초상화 30점엔 눈을 그려 넣지 않았다.

주환선 작가가 그린 김구 선생. 사진 주환선 작가

주환선 작가가 그린 김구 선생. 사진 주환선 작가

이유를 묻자 주 작가는 “유화 한 점을 완성하는 데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사진 속 독립운동가와 눈을 맞추며 그 인물 업적과 삶을 되새긴다”며 “어느 순간 내가 화실에 편히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을 그림에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눈을 그리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환선 작가가 그린 유관순 열사. 사진 주환선 작가

주환선 작가가 그린 유관순 열사. 사진 주환선 작가

눈이 없는 독립운동가 초상화는 전시회를 찾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주 작가는 “눈이 없어서 알아보지 못한 초상화 속 인물이 안중근ㆍ김구 같은 유명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충격을 받는 관객이 많다. 이들이 새삼 독립운동가 사진을 찾아 그 인물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초상화 그리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만화가 꿈꾸던 소년 ‘독립운동가 초상화가’ 됐다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그림에 소질을 보인 주 작가는 소년 시절 만화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그는 “국내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일본 도쿄에도 5년가량 머무르며 아카데미에서 디지털 등 산업미술 분야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2013년 역사다큐멘터리 한 편을 접한 게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그리게 된 계기였다. 주 작가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려면 가까운 친구는 물론 가장 아끼는 가족을 등지거나, 그 사람 목숨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며 “다큐멘터리를 본 뒤 홀린 듯 처음으로 그렸던 건 안중근 의사 초상화다. 그때 느낀 뜨거운 감동을 관객과도 나누고 싶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주환선 작가 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회. 사진 주환선 작가

주환선 작가 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회. 사진 주환선 작가

주 작가는 비교적 업적이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를 찾아내 그들 얼굴을 초상화로 남기는 작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에 뛰어들고도 사료 속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선조들이 많다. 만약 이름이나 행적이 남았다면 초상화를 그려 더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 얼굴 사진을 찾아다닌다”고 설명했다. 해녀 출신으로 제주에서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여성독립운동가 부춘화 열사, 부산에서 ‘동산의원’을 설립해 만주 독립군을 지원한 김형기 선생 얼굴도 초상화로 남겼다.

“1만7000명 얼굴 모두 담아내고 싶다”

현재까지 주 작가는 독립운동가 초상화로 8차례 개인ㆍ그룹전시회를 열었다. 주 작가는 “유공자로 인정된 독립운동가 1만7644명의 얼굴을 모두 그리는 게 목표"라며 “재활용 비닐 등 썩지 않는 소재를 이용해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얼굴을 표현하는 방식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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