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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자유 독립운동"…기미독립선언서와 궤 맞춘 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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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은 1일 ‘104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3·1 만세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며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던 우리가 어떠한 세상을 염원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날이었다”고 말했다.

3·1운동에 대한 역사 인식은 역대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치·사상적 지향에 따라 달랐는데 윤 대통령은 ‘자유 민주국가를 염원한 독립운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과거 대통령의 기념사와 차별된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은 항일 독립투쟁의 정신적 토대”라며 '항일'에 방점을 찍었다. 또 3·1 운동과 탄핵 촛불 집회를 연결지으며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냈다. 이 정신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을 촉구했고,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08년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실용에 방점을 찍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5분 25초 1366자에 담긴 윤 대통령의 첫 3·1절 기념사는 과거사·주권 문제는 당당한 입장(‘기억·과거’ 각각 4회)을 견지하면서도 자유(8회)를 토대로 한·일 양국이 협력(4회) 해 미래(5회)로 나아가자는 구성이었다.

윤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를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과거”로 규정하며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강조했다. 일본을 '과거 침략자'에서 '현재 파트너'로 규정해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방향성을 뚜렷하게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북한의 군사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닥쳐온 글로벌 복합위기 등을 언급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다시 3·1운동과 연결지으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의 그 정신과 절대 다르지 않다. 이것이 선열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기념사 말미에는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하며 ‘미래’를 자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영광의 역사든, 부끄럽고 슬픈 역사든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지키고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며 “우리 모두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서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기미독립선언서의 요지가 원망·원한이 아닌 포용·화해와 인류번영”이라며 “이는 윤 대통령의 평소 신념과도 부합한다”고 전했다.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겠다”는 문구 등이 있다.

강제징용 등 한·일 현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일본과 막판 협의를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북한 관련 언급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기념식은 서울 중구 이화여고 내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렸다. 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과거 MB·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세종문화회관에서 3·1절 기념식을 열었고, 문 전 대통령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은 만세 삼창과 함께 기념식이 끝난 후 퇴장하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악수를 청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대면한 것은 지난해 10월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이후 5개월만이다.

정치권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 아닌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지향적인 우리의 방향을 제시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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