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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할아버지 그 말씀에…요리사였던 손자, 베테랑 경찰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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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최재황씨가 2018년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건물 앞에서 외증조부 권준 선생의 영정을 들고 있다. 최씨는 이날 경찰청에서 만드는 임시정부 경찰사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임시정부의 옛 터를 찾았다.

최재황씨가 2018년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건물 앞에서 외증조부 권준 선생의 영정을 들고 있다. 최씨는 이날 경찰청에서 만드는 임시정부 경찰사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임시정부의 옛 터를 찾았다.

지난 28일 오후 2시쯤 서울시 중구 유관순기념관. 104주년 3·1절 기념식 리허설에 정복을 입은 한 경찰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3·1절 기념식 무대에 오르는 유일한 경찰관인 최재황(46) 경감(인천중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이다. 노신사와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올라선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최 경감은 1일 행사에서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외손자 김세원씨, 장진홍 선생의 현손(玄孫·4대손)녀 장예진양과 함께 만세삼창을 한다. 지난해 8월 인천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최 경감이 독립군가를 낭송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본 행안부 관계자가 그에게 출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집안인 점도 한몫했다. 최 경감은 독립운동가 최장학(1909~?) 선생의 손자이자, 권준(1895~1959) 임시정부 경무과장의 외증손자다.

최재황씨의 조부 최장학(오른쪽) 선생과 조모 권태운(왼쪽)씨. 최장학 선생은 광복군 제1지대 활동 권준 선생을 만났다. 권준 선생이 일제 암살 위기에 놓였던 자신을 구해준 최장학 선생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1983년쯤 실종됐던 최장학 선생은 1987년 9월12일 생사 불명기간이 만료됐다.사진 최재황

최재황씨의 조부 최장학(오른쪽) 선생과 조모 권태운(왼쪽)씨. 최장학 선생은 광복군 제1지대 활동 권준 선생을 만났다. 권준 선생이 일제 암살 위기에 놓였던 자신을 구해준 최장학 선생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1983년쯤 실종됐던 최장학 선생은 1987년 9월12일 생사 불명기간이 만료됐다.사진 최재황

“나라를 지키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원래 요리사였던 최 경감이 16년 차 베테랑 경찰이 된 건, 어린 시절 들었던 할아버지 최장학 선생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다. 최 선생은 1927년 부산에서 비밀결사 흑조회를 만들어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본 헌병대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후 중국으로 떠나 진가명(陳嘉明)이란 이름으로 의열단에서 활동했고, 1942년부턴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서 공작 활동을 했다. 정보 수집과 포로 심문 등을 맡았다고 한다. 1983년 실종돼 1987년으로 생사불명기간이 만료됐다.

2006년 서른살 늦깎이로 입은 경찰 제복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고 한다. 첩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대기업 비자금 의혹, 도의원 부동산 투기, 국세청 직원 뇌물 수수 등 입수한 첩보들이 대부분 수사로 이어졌다. 2021년 6월엔 “N번방 규모의 성착취물판매방이 운영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최 경감의 첩보 보고서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그해 가을 운영자를 붙잡았다.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국가수사본부 ‘범죄첩보 분야 핵심 정책과제’ 관련 공적심사위원회에서 특별 승진자로 선정됐고 지난해 10월엔 경찰 인재개발원에서 ‘범죄첩보 수집기법’ 일일 강사로 나섰다. 최 경감은 “평소 범죄신고 채팅방을 운영하는 등 첩보망을 갖추고 여러 기관과 관계를 돈독히 맺는 게 비법”이라고 말했다. 28일 3·1절 기념식 리허설을 마친 뒤 최 경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의미 있는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다”며 “첩보 전문가로 성장해 할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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