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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리커창 총리의 스승’ 리이닝 베이징대 교수 별세

중앙일보

입력

 고 리이닝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명예원장. 베이징대 홈페이지

고 리이닝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명예원장. 베이징대 홈페이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이론적 토대가 된 가격제도와 소유제도 개혁 이론을 제시한 경제학자 리이닝(厲以寧)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光華管理學院, MBA 스쿨) 명예원장이 27일 베이징 셰허(協和)의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리이닝 원장은 오는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은퇴하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의 베이징대 석·박사 학위를 지도해 ‘총리의 스승’으로 불린다. 리위안차오(李源潮) 전 국가부주석, 루하오(陸昊) 현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주임 등 공청단파의 핵심 정치인들도 리이닝의 제자였다.

베이징대는 27일 “(리 원장은) 경제체제 개혁의 적극적인 제창자, 저명한 경제학자, 걸출한 교육자였다”며 애도했다.

리 원장은 ‘개혁개방의 경제 이론가’로 꼽힌다. 그는 2018년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100명에게 수여한 공헌 표창을 받았다. 중국 당국은 당시 ‘중국에서 가장 빨리 주식회사 제도 개혁 이론을 제시한 학자로 국유기업의 재산권 개혁을 추진했으며 증권법과 증권투자펀드법을 기초(起草)했다’는 점을 수상 사유로 밝혔다.

1971년 장시(江西)성 난창(南昌) 리위저우(鯉魚洲)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고 리이닝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명예원장. 웨이보 캡처

1971년 장시(江西)성 난창(南昌) 리위저우(鯉魚洲)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고 리이닝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명예원장. 웨이보 캡처

1930년 11월 난징에서 태어난 리 원장은 1951년 베이징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대학에 남아 교편을 잡던 그는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대기근을 보고 계획경제의 불가능을 확인했다고 한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 1979년 베이징대 부교수로 복직한 그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베이징대 경제학원의 경제관리학과 주임을 맡으며 광화관리학원을 처음 만들었다.

1986년 교내 학술대회에서 그는 주식회사 제도 개혁 이론을 주장하며 시장경제 개혁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을 제공했다. 주식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생산 요소를 집중시키고 지분에 따라 이익을 분배하는 주주제 개혁을 주장하면서 ‘리주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중국의 의회격인 전인대 상무위원 겸 재경위원회 부주임을 역임했으며, 이후 2003년부터는 국정 자문기구인 전국정협 경제위원회 부주임으로 활동했다. 그는 공산당원이면서도 중국 민주당파 중 하나인 민주동맹의 부주석을 역임했다.

리 원장은 줄곧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공유제를 비판했다. 이를테면 “중국 경제 개혁의 실패는 가격 개혁의 실패에서 시작될 것이며, 중국 경제 개혁의 성공은 반드시 소유제 개혁의 성공에 달려있다”는 주장 등이다.

리 원장은 중국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3차 분배’ 이론을 1980년대에 제시했다. 즉 시장에 생산 요소를 제공해 얻는 1차 분배, 정부가 세금과 빈곤 구제 정책으로 시행하는 2차 분배와 달리 3차 분배는 자율과 도덕에 따른 공익 기부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가난한 사람은 없으며 중국의 빈민은 부를 기다리는 사람(待富者)”이라고 역설했던 그의 3차 분배 이론은 중국 정부가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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