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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가 불법 점거한 공사현장, 쇠파이프 들고 탈환한 회사의 최후

중앙일보

입력

내 영역에 용역업체를 앞세워 침입한 것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공항사진기자단

내 영역에 용역업체를 앞세워 침입한 것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공항사진기자단

 2018년 1월 8일 새벽 3시 서울 관악구의 한 공사장. 경비원 10명이 지키고 있던 현장에 쇠파이프와 망치를 든 용역직원 80여명이 들이닥쳐 철제 펜스를 뜯어내고 점거했다. 들이닥친 쪽은 ‘정식’ 관리회사 A, 지키고 있던 쪽이 불법 점거중이던 회사 B였다. 기소된 건 폭력을 행사한 A사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사 대표 등에 대해 특수건조물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불법 점거도 “적법한 절차로 대응해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스1

재판의 쟁점은 ‘불법 점거된 내 영역을 회복하기 위해 현장에 진입한 것이지 건조물 침입에 해당되는지’였다. 건조물 침입죄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2017년 11월부터 무단 점거해 온 B사가 관할 경찰서에 ‘집단민원현장 경비원배치 신고’를 하고 경비원 10명을 상주시키며 관리해온 점을 들어 A가 용역직원을 앞세워 밀고 들어가 ‘건조물의 사실상 평온’을 해쳤다는 것이다.

해당 공사장에 대한 ‘법률상 권리’가 있다는 A의 주장은 범죄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게 1심부터 대법원까지 계속된 일관된 결론이다. 법원은 “설령 정당한 권리가 있더라도, 정당한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침입할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상대가 불법으로 점거했더라도, 소송 등 적법한 절차를 통해 구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에 포크레인을 동원하고, 철제 펜스를 뜯는 등 물리력을 행사한 것은 “법이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행위”라는 취지다.

1심 재판부는 A가 정당한 관리자임은 인정하면서도 “쇠파이프, 망치등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용역들이 위력을 행사하며 침입해, 사람을 끌어내는 건 자칫 타인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행위”라며 A측 피고인 3명에게 징역 4월, 용역업체 관련 피고인 2명에게 징역 3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이는 그대로 확정됐다.

“‘불법점거’도 ‘업무’로 보호” 

그럼 ‘불법 점거’도 ‘업무’로 보고 업무방해죄도 성립될 수 있을까. 법원은 이 역시 긍정했다. ‘업무방해죄’가 보호하는 ‘업무’는 꼭 적법하거나 유효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업무 개시나 수행과정에 실체상‧절차상의 하자가 있더라도,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적이지 않는 이상”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정치균 법무법인 서교 변호사는 “불법에 불법으로 대응하는 걸 용인하면 무법을 장려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고, 법은 그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라며 “법적 분쟁이 물리력 대결로 번지곤 하는 건설현장 등에 시사점이 있는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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