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할 정도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26일부터 농업문제에 초점을 둔 전원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무오류’를 주장하는 북한 최고 지도자가 전면에 나설만큼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7일 븍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통신은 이번 전원회의의 구체적 의제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농촌혁명강령 실현의 첫해인 2022년도 사업정형을 분석ㆍ총화하고 당면한 중요 과업들과 국가경제발전을 위한 현 단계에서 제기되는 절박한 과업들, 그 해결을 위한 실천적 방도들을 토의ㆍ결정하게 된다”고 전했다.
사실상 1년여 년 전 김정은이 직접 제시했던 농업정책을 긴급하게 정비하기 위한 성격의 회의가 소집됐다는 뜻이다. 북한 스스로 ‘절박한 과업’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주민들의 식량난에 대한 북한 정권의 우려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북한은 통상 1년에 1~2번 개최하던 전원회의를 이번엔 불과 2개월 만에 재소집했다. 북한 당 중앙위 정치국은 지난 5일 회의 소집을 결정하면서 “농업발전의 근본적 변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이례적으로 회의를 서둘러 소집할 만큼 식량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 말로 풀이된다.
특히 ‘먹는 문제’는 북한의 3대 세습을 이룬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처음 공개적으로 했던 약속이란 점에서 정치적 의미도 적지 않다.
김정은은 집권 후 첫 대중연설이었던 2012년 4월 열병식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직접 밝혔던 ‘김씨 3대 정권’의 첫 약속이자 명분이었다.
그러나 농업 생산은 계속 뒷걸음질 쳤고, 2020년 10월 열병식에선 “면목이 없다.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은 미국에 맞서기 위한 핵무력 고도화를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향후 정권의 방향으로 설정한 상태”라며 “군사 부문에 막대한 자금을 부여해야 하는 상황에서 식량난으로 인한 민심 이반 가능성이 확대될 가능성은 북한의 정권 차원에서도 가장 고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다수의 탈북자들은 북한의 현재 상황과 관련 중앙일보에 “식의주(食衣住) 문제만 해결하면 독재국가의 특성상 아직 주민 통제가 충분히 가능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식량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권의 통제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민심을 감안해 농업과 관련이 있는 일부 당 핵심 간부들에게 문책성 인사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현재 식량난이 국제 제재라는 외부 요인과 농업의 현대화를 포함한 북한 내부의 농업산업 구조조정 등 복합적 요인이 겹쳐 발생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뾰족한 돌파구가 마련되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북한의 식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처럼 아사자가 속출하는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북한의 식량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했던 18일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선 “북한의 식량난으로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한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