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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이 '미스터트롯' 베꼈나"…방송계 트로트 전쟁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TV조선 ‘미스터트롯’은 트로트 열풍을 만든 ‘미스트롯’에 이어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가수 임영웅. [사진 TV조선]

TV조선 ‘미스터트롯’은 트로트 열풍을 만든 ‘미스트롯’에 이어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가수 임영웅. [사진 TV조선]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 인기를 끌자 유사한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유독 MBN의 프로그램은 형식, 테마, 등장 인물, 세트 구성 등 ‘창작성 있는 부분’이 너무 유사하다.” (TV조선 측)

“그 ‘창작성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미스터트롯’은 기존 경연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아 독창성이 없다. MBN의 ‘보이스트롯’은 TV조선의 ‘미스터트롯’과 다른 프로그램이다.” (MBN 측)

 TV조선과 MBN의 ‘트로트 전쟁’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2부(부장 이영광)는 24일 TV조선이 자신의 간판 프로그램을 MBN이 베꼈다며 낸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소송 첫 재판을 열었다. 방송사간 프로그램 포맷 표절 소송은 처음이다.

포맷은 프로그램 콘텐트에서 일종의 레시피다. 포맷도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인지는 2000년대 이후 각국의 고민이었는데 우리 법원은 6년 전 SBS가 CJ E&M을 상대로 낸 ‘짝’ 소송을 통해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SBS는 2011년부터 ‘짝’을 방영해 인기를 얻었는데, 이듬해 CJ E&M이 넷마블 사이트에 게임 홍보용으로 ‘짝꿍 게이머 특집’을 올렸다. ‘짝’은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일반 남녀가 애정촌이란 공간에서 짝을 찾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방송이고, ‘짝꿍 게이머 특집’은 게임을 즐기는 남녀가 ‘애정촌 던전(Dungeon)’이란 장소에 모여 함께 게임할 이성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CJ E&M은 2012년 온라인 게임 RIFT 홍보를 위해 SBS '짝'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웹에 게시했다. 당시 화면 캡쳐

CJ E&M은 2012년 온라인 게임 RIFT 홍보를 위해 SBS '짝'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웹에 게시했다. 당시 화면 캡쳐

재판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창작성’이었다.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창작성이란 독창성(originality)으로, 천지개벽할 만큼 새로울 필요는 없지만 독자적인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이 있어야 하고 누가 해도 비슷할 수밖에 없는 건 창작물로 보지 않는다.

1·2심은 각 요소들의 독창성을 부정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봤다. 제목·등장인물·상황 표현방식이나 출연자 자기소개 방식, 속마음 인터뷰, 데이트권 얻기 위한 게임 등을 하나씩 뜯어보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흔히 할 수 있는 거란 해석이었다. 그러나 2017년 대법원은 각 요소 조합의 독창성을 인정해 SBS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사회자 없이 출연 남녀가 합숙하며 제작진이 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한 게 기존 짝짓기 프로그램과 다르고 ▶출연 남녀들이 짝을 찾아가는 모습을 꾸밈 없이 드러나게 해 시청자들이 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느낌을 갖도록 여러 요소들을 결합한 점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개별 요소에 창작성이 없더라도 구성요소의 선택이나 배열이 충분히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기존 프로그램과는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원조 프로그램의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해도 후발 프로그램에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면 표절이 아니다. 그냥 각기 다른 창작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SBS는 CJ E&M이 tvN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코너 중 하나로 ‘쨕 재소자 특집’을 내보낸 것도 문제 삼았는데 이건 인정되지 않았다. ‘전문 연기자가 과장된 상황을 연기하는 성인 대상 코미디물’이란 점에서 ‘짝’과 유사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당시 SNL에서 SBS '짝'을 패러디해 만든 '쨕 재소자 특집' 코너 화면 중 일부. SNL은 시즌을 달리해 지금도 유명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코너를 내보내고 있다.

당시 SNL에서 SBS '짝'을 패러디해 만든 '쨕 재소자 특집' 코너 화면 중 일부. SNL은 시즌을 달리해 지금도 유명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코너를 내보내고 있다.

미국에서도 2003년 CBS가 ABC의 ‘셀러브리티’가 자사의 ‘서바이버’의 포맷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낸 적이 있다.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은 두 프로그램이 “전체적인 관념과 느낌(total concept and feel)”이 달라 유사하지 않다고 봤다. 둘 다 외진 데 격리돼 생존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서바이버’는 심각한 컨셉과 느낌으로 고화질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반면 ‘셀러브리티’는 코믹한 분위기에 홈비디오 같은 분위기였단 판단이다.

TV조선과 MBN이 이날 10여분만에 끝난 첫 재판서 ‘창작성’과 ‘유사성’을 이야기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TV조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우리 대법원이 프로그램 포맷을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을 전세계에서 처음 내렸다”며 “다만 포맷도 저작권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만 이야기했을 뿐, 어떤 구성 요건이 있을 때 보호 받을 수 있는지는 후속 판례에 맡겨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그 ‘후속 판례’가 될 전망이다.

이번 TV조선-MBN 다툼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미스·미스터트롯을 제작한 서혜진PD가 TV조선을 떠나 독립 스튜디오를 만든 뒤 MBN의 또 다른 트로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TV조선으로선 MBN에 맞서 미스·미스터트롯의 독창성을 적극 피력해야 할 당사자가 상대편과 특수관계가 돼 버린 셈이다. 방송계 안팎에서 주목하고 있는 ‘포맷 전쟁’은 소장 접수 2년만에 이제 본격 시작이다. 다음 재판은 4월 21일이다.

TV조선 ‘미스트롯’과 MBN ‘보이스트롯’은

MBN '보이스트롯'의 한 장면. [MBN]

MBN '보이스트롯'의 한 장면. [MBN]

TV조선의 간판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2019년 2~5월)’은 트로트 열풍의 시초격이다.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고 송가인 등 유명인을 발굴했다. 인기는 ‘내일은 미스터트롯(2020년 1~3월)’으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열풍이 다른 방송사에도 불었단 점이다. SBS ‘트롯신이 떴다(2020년 3~12월)’, MBC ‘트로트의 민족(2020년 10월~2021년1월)’ 등 트로트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MBN도 ‘보이스트롯(2020년 7~9월)’을 냈다.

TV조선은 “방송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마구잡이 포맷 베끼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당시 입장문)” 2021년 1월 MBN을 상대로 민사 소송에 나섰다. 양 측 모두 대형 로펌(TV조선은 세종, MBN은 광장)을 선임해 큰 싸움에 임할 태세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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