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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긴축 기조로 한·미 금리차 벌어져 또 ‘킹달러’ 공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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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호 08면

환율 1300원대 재돌파 파장

‘일반적인 방식으로의 회귀’. 지난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두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내놓은 평가다. 물가 상승 우려에 숨가쁘게 금리를 올리던 이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금리 조정 후 시간을 갖고 지켜보던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부동산이 불안하니 한은이 물가를 고려치 않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는 해석은 한은의 의도와 다르다”며 금리 인상 종료와는 선을 그었지만, 지금까지의 금리 인상 행보에서 한발 물러선 것은 인정한 셈이다.

한은은 지난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7회 연속, 지난 2021년 8월 이후 열두 번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가운데 열 번 금리를 올릴 만큼 물가 잡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그랬던 한은이 금리를 동결하며 물가와의 전쟁에서 소강 국면에 돌입한 이유도 단연 물가다. 지난해 말 5%까지 하락했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올해 1월 5.2%로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3월부터 4%대, 연말 3%대 초반까지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 것이다. 금통위 결과와 함께 발표된 ‘수정 경제전망’에서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6%에서 3.5%로 낮춰 잡았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시장에선 경기 침체 우려에 한은의 선택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총재가 “운전할 때 안개가 가득하면 사라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언급하고, 정부에서도 최근 경기 둔화를 공식 인정할 만큼 한국 경제는 어려운 처지다.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0.4%를 기록하고,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은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벌이며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한은에서도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지난해 11월 전망치(1.7%) 대비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한 상황이라 한국은행은 하강하고 있는 국내 경기에 보다 집중해야 할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 우려에 금리 상승의 고삐를 죈 반대급부로 환율이 불안해졌다. 최근 가파르게 상승한 달러 가치에 ‘킹달러(달러 초강세)’의 재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2월 초 12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달러당 원화값은 지난 22일 종가 기준 1300원대를 넘어서며 약세(달러 강세)로 전환했다. 달러당 원화값이 종가 기준 13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 19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불과 보름여 만에 80원가량 상승(원화가치 하락)할 만큼 변동폭도 가파르다. 물가와의 총력전에서 한발 물러서 경기 부진의 역습을 주시해야 하는 한은 입장에선 환율을 두고도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란 얘기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이번 금통위에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가장 큰 이유는 환율과 국제금융시장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금리 동결로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 금통위 회의 가운데 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는 연간 여덟 차례 열리는데, 다음 회의는 4월 13일이다. 한은이 긴급 회의를 소집하지 않는 한, 이날까지 한국의 기준금리는 3.5%에 묶인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다시금 강경한 긴축 기조를 내비치는 상황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선 “연준은 경제 둔화나 경기 침체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는 상태를 더 우려한다”는 연준 위원의 발언이 담겼다. 미국 경제에 타격이 있더라도 금리 인상 기조에 고삐를 죄겠다는 얘기다.

이에 시장에선 미국 연준이 향후 세 차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데 베팅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연준이 6월까지 기준금리를 3회 연속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은 70%로 치솟았다.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 인사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3월 FOMC에서 빅스텝(0.5%포인트 인상)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미 1.25%포인트까지 벌어진 한미 금리차가 내달 역대 최대치(1.5%포인트)로 벌어지는 건 기정사실화됐고, 그 이상도 가능하단 얘기다. 한미 금리차가 벌어질수록 환율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자금이 되돌아가면서 달러가 귀해지면 그만큼 원화 가치는 하락(환율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금리차가 0.75%포인트 내외로 벌어졌던 지난해에도 ‘킹달러’에 신음했던 전례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원화 가치가 작년만큼 맥없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한미 금리차 말고도 주변 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지난해 ‘킹달러’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동반 약세만 하더라도 올해는 딴 판이란 관측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가 환율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이창용 총재가 밝힌 것처럼 금리 말고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며 “과거에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등이 동반 약세를 보이며 ‘킹달러’를 자극했으나 올해는 두 통화 모두 약세에서 벗어나고 있는 만큼, 달러당 원화값도 1330~1350원 수준에서 고점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통화에 영향을 받는 한국 원화값도 달러당 1400원선까지 무너지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아시아 주요국 통화 가치는 올해 들어 상승세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지난해 8월 달러당 7.3위안까지 하락하며 ‘포치(破七)’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 6.8위안 수준으로 올라왔다. 지난해 한때 달러당 150엔대를 넘어 추락했던 엔화 가치 역시 최근 130엔대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달러당 100엔대까지는 아직도 격차가 크지만, ‘킹달러’에 신음하던 시기와는 다른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들 국가의 통화 강세를 점친다. 중국만 하더라도 지난해 말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기대감을 바탕으로 최근 들어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은 앞 다퉈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지난 1월에만 1413억 위안(약 25조7000억원)가량을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등 중국 경제로 자금이 밀어넣는 상황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최근 중국 위안화 가치가 절상된 것은 중국 정부의 내수 경기 부양 의지 덕분”이라며 “위안화 가치를 높이면 수입물가를 낮춰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기 용이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올해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6.6~6.7위안 정도로 소폭 절상하고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전세계가 금리를 올릴 때 제로금리를 이어가며 극단적 완화정책을 고수했던 일본에선 최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후임으로 우에다 가즈오 도쿄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지명되며 통화 정책 전환 기대감이 커졌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의 버냉키’라 평가한 우에다 교수가 오는 4월 총재 임기를 시작하면 통화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고 엔화 가치가 상승할 것이란 게 시장의 공통된 전망이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일본 재무성에서 2025년을 전후로 기준금리가 1%대까지 오르는 상황을 가정하고 국채 이자 부담을 시뮬레이션해본 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보고했다”며 “일본 정부에서 미리 계산해봤다는 것은 제로금리 종료를 이미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킹달러’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아시아 주요국 통화 가치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더라도, 국내 시장 금리가 급락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로 원화가치가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금리 인상이 진행되다 동결 결정이 나오자 시장 금리가 먼저 하락하곤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준금리 상승세가 꺾이면 자칫 금리 정점이란 시각이 퍼지면서 시장 금리가 낮아질 수 있다”며 “한은이 금리를 동결하면서 금리 인상 기조는 여전하다고 경고한 것도 시장 심리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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