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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계란탕(鷄蛋湯), 양기충만 보양식?

중앙일보

입력

계란탕. 사진 셔터스톡

계란탕. 사진 셔터스톡

우리나라 골목길의 중국 반점에서 볶음밥을 시키면 예전에는 계란탕이 딸려 나왔다. 요즘은 짬뽕 국물이 더 흔해진 것 같다. 어쨌든 왜 하필 계란탕이었을까?

계란탕은 중국에서도 흔하게 먹는다. 서민들이 주로 가는 대중음식점 차림표에서 언제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음식이 토마토 계란탕(西紅枾鷄蛋湯)이다. 대부분 가격도 제일 저렴하다.

집에서도 많이 먹는다. 달걀 풀어 끓인 계란탕인 지단탕(鷄蛋湯)일 수도 있고 오리알로 대신한 단화탕(蛋花湯)일 수도 있다. 하여튼 우리가 집에서 수시로 미역국 끓여 먹듯 중국 가정에서 일상으로 먹는 음식이다. 중국식 표현으로 이른바 자창차이(家常采)다.

중국 사람들, 왜 이렇게 계란탕을 많이 먹을까? 

맛있는 데다 재룟값도 싸고 조리도 쉬우니 자주 먹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문화적 배경도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중국 계란탕은 여러 면에서 우리 미역국과 많이 닮았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평소 흔하게 먹는 미역국이지만 한국인은 특별한 날, 값비싼 요리 대신 미역국을 챙겨 먹는다.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 음식이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기를 출산한 산모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산후조리 음식이다.

귀빠진 날과 관련해 미역국 먹는 이유는 대충 알고 있다. 영양학적으로는 미역에 요오드, 칼슘,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해 모유를 먹는 갓난아이 성장 발육에 좋고, 이런 성분이 빠져나간 산모의 영양 보충에도 도움이 된다.

옛날 사람들, 이를 놓고 산모가 미역국 먹으면 피가 맑아진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납득이 안 됐는지 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미역을 먹으니 검붉어진 피가 맑아졌다는 전설까지 동원했다.

생일 미역국도 마찬가지다. 영양학적 이유에 더해 민속적, 신화적 이유가 덧붙여졌다. 미역국은 한민족의 출산과 생명을 주관하는 민속 신, 삼신할머니에게 바친 제물이었으니 생일에 미역국을 먹으며 무병장수를 축원했던 것이다. 의식을 하건 안 하건 미역국은 이렇게 한국인에게 정서적으로 각별한 음식이다.

중국에서는 계란탕이 심정적으로 편안함과 특별함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라고 한다. 일단 한국 엄마들이 아이 낳고 미역국 먹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출산 후 계란탕을 먹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고 민족에 따라 별도로 챙겨 먹는 음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계란탕을 먹는다고 한다. 혹은 여기에 더해 닭죽을 먹는 경우도 있다.

계란탕도 그냥 계란이나 오리알만 풀어 끓이는 게 아니다. 우리가 미역국 끓일 때 지역에 따라 소고기미역국, 가자미 우럭 미역국, 굴 미역국 끓이듯 중국도 환경과 풍속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함께 넣어 끓인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흔히 먹는 토마토 계란탕이지만 전통적으로는 익모초 계란탕을 비롯해 상추 줄기 계란탕, 시금치 계란탕, 부추 계란탕, 바닷가 마을에서는 김 계란탕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어쨌거나 조합은 다양해도 기본이 되는 베이스는 역시 계란탕이다. 그런데 산후조리 음식으로 왜 계란탕을 먹을까?

계란은 영양가가 높고 아기와 산모에게 필요한 무기질이 풍부해 아기의 발육과 산후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미역국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가 미역국 좋은 이유를 전설과 신화를 빌어 설명하는 것처럼 중국은 계란탕 먹게 된 배경을 음양론, 우주론적 조화에서 찾았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닭을 양기가 충만한 동물로 여겼다.『주역』에서는 닭을 양조(陽鳥)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니 닭이 낳은 달걀은 양기 덩어리인 셈이다. 설명이 부족했는지 명나라 의학서『본초강목』에 그럴듯한 풀이가 덧붙여졌다. 석영가루 먹여 키운 닭을 영계(英鷄)라고 하는데 영계가 낳은 달걀을 먹으면 양기가 살아나 허해진 기운을 보충하고 신체에 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겨울에 먹으면 추위를 모른다고도 했다. 참고로 석영가루는 결국 모래알이고 닭은 모래를 쪼아먹어 모래주머니에 저장하니 확대 해석하면 모든 달걀이 영계 알인 셈이다. 그렇기에 달걀은 출산으로 양기가 빠져나간 산모의 회복에 좋다는 것이니 계란탕이 중국에서 산후조리 음식이 된 배경이다.

계란탕과 함께 끓이는 재료의 궁합도 특별하다. 토마토 계란탕의 토마토는 익히 알려졌으니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겠고 익모초(益母草) 계란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성에게 좋은 풀이다.

이집트가 원산지인 상추는 옛날 정력을 북돋는 채소로 유명했으니 다시 말해 양기가 충만한 채소이고, 부추 또한 별명이 양기를 일으키는 풀인 기양초(起陽草)였으니 계란탕과는 찰떡궁합이다.

그러고 보니 중국집 볶음밥에 딸려 나왔던 게란탕, 이게 보통 음식이 아니었다. 또 하나, 중국에서는 양기 충만 운운하며 요란스럽지만 우리한테는 만들기 쉬운 간편 음식이고, 특히 산모한테는 아기 닭살 돋는다며 썩 환영받는 음식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같은 음식이라도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다.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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