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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아이 괴롭혀" 학폭 혼낸 엄마…부산 유죄, 인천 무죄 왜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너무 괴로워” 아이 말에 가해 학생 만난 엄마들

“엄마, 걔가 나 또 괴롭혔어.” 부산에 사는 40대 학부모 A씨는 2021년 9월 귀가한 중학생 딸이 울음을 터뜨리며 이같이 말하자 억장이 무너졌다. 해당 학생은 한 달 전부터 딸을 괴롭혔다고 한다. A씨는 가해 학생이 다니는 학원에 찾아가 “우리 딸이랑 친하게 지내지도, 말도 걸지 말라고 했지. 그동안은 동네 친구라서 말로 하고 넘어갔는데 이제는 참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컷 아동폭력 이미지

컷 아동폭력 이미지

인천의 50대 학부모 B씨도 2021년 3월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의 아들(8)은 동갑내기 친구와 5개월가량 자주 다퉜다. “자꾸 나를 돼지라고 놀리며 건드린다”는 아들 하소연에 B씨는 학원 차를 기다리던 아들 친구에게 찾아가 “네가 우리 아들을 손으로 툭툭 치고 놀린다고 하던데 계속 지켜보고 있다. 한 번 만 더 그러면 신고하겠다”며 훈계했다.

부산母 ‘유죄’ 인천母 ‘무죄’ 법원 판결 엇갈렸다

가해 학생 측 신고로 A씨와 B씨 모두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3단독 임효량 판사는 최근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임 판사는 “A씨 딸이 피해자(가해 학생)로 인해 울면서 집에 오고 딸에 대한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A씨가 이런 행동을 한 사실은 인정되나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A씨 딸이 다니는 중학교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2021년 8월부터 3개월간 A씨 딸을 괴롭힌 것을 인정해 가해 학생에게 접촉금지와 서면 사과, 사회봉사 등 조처를 내렸다. 하지만 법원은 가해 학생을 직접 만나 훈계한 A씨 행동이 사회 상규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인천지법 형사7단독 이해빈 판사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B씨 행위가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 판사는 “이미 학교폭력을 당한 자녀가 추가 피해를 보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같은 행동을 했다”며 “정신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로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가해 학생 ‘반응’이 법원 판단 갈랐다

발생 동기와 범행 형태가 유사한 두 사건을 두고 판결이 엇갈리자 전문가는 “훈계를 받은 어린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기준”이라고 분석했다.

한병철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는 “정서적 학대행위인지를 판단할 때 어린이 반응과 상태 변화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변호사는 “두 사건 모두 어른이 아이에게 크게 소리쳤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부산 사건은 A씨에게 꾸지람을 들은 아동이 현장에서 많이 울었고, 병원 치료를 받으며 의사에게 불안감을 표출한 점 등을 인정해 정서적 학대로 판단한 것”이라며 “반면 인천 사건에서는 병원 치료 등 참조할 만한 다른 사정이 없어 ‘정서적 학대행위’까지 인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학폭 신고에도 피해 지속, 어떡해야?

판결이 엇갈리면서 혼란스러워하는 학부모도 많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40대 학부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부터 ‘접촉 금지’ 등 처분을 받아도 같은 동네에서 학교·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며 “아이를 계속 괴롭히면 A·B씨와 비슷한 행동을 하려는 부모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면 훈계’는 가장 피해야 할 방법이라고 한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서면 사과나 접촉금지 등 처분을 결정하면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해당 학교 교장이 처분 이행을 지도, 완료하고 교육지원청에 보고해야 한다”며 “만약 조처가 내려졌는데도 가해 학생이 고의로 괴롭힘을 지속한다면 학교에 또 신고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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