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안 생기는데…뭐가 문제일까요?
2021년 12월 6일, ‘학생샤오아이(小艾同學)’라는 닉네임을 가진 한 남성이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에 위와 같은 질문을 올렸다. 글에는 장황한 설명 대신 본인의 사진 한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샤오훙수에 처음 등장한 그는 검은색 양복에 흰색 셔츠,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통통한 체형에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었으며, 얼굴에는 다소 위축돼 보이는 어색한 미소가 가득했다.
사진 샤오훙수 @小艾同學
해당 게시물을 본 샤오훙수 이용자들은 남성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댓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이들은 당근과 채찍을 바꿔 들며 남성의 헤어스타일, 체형, 패션 등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집어냈다.
댓글 창에는 나이 들어 보이는 헤어스타일에 대한 지적과 운동하고 살을 빼라는 조언이 주를 이뤘다. 거침없는 외모 품평에 기분이 상할 만도 하건만, 남성은 줄곧 겸손한 태도로 다른 이용자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새해가 밝은 후엔 이들의 의견을 수용해 대대적인 ‘개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사진 샤오훙수 @小艾同學
그 과정에서 물론 시행착오도 겪었다. 남성은 일부 누리꾼이 제안한 대로, 가르마를 바꾸고 이마를 깐 채 안경 쓴 사진을 샤오훙수에 올렸다. 처음보다는 나아진 모습이었지만, 대다수의 누리꾼은 “공무원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엄청 느끼하다” 등의 혹평을 쏟아냈다.
헤어스타일, 패션, 체형변화 등. 남성은 자신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길 때마다 샤오훙수에 사진을 올리고 피드백을 구했다.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댓글 창은 열띤 토론장으로 바뀌었다. 남성에게 더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를 두고 누리꾼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렇게 1년 후, 남성은 180도 변신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샤오훙수에 등장했다. 댄디한 스타일에 날카로운 턱선, 지적미 넘치는 안경까지. 그는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사진 샤오훙수 @小艾同學
사진을 본 누리꾼은 남성의 의지와 끈기에 찬사를 보냈다. 환골탈태에 성공한 그는 ‘샤오훙수에서 가장 말 잘 듣는 남자’ ‘샤오훙수에서 가장 끈기 있는 남자’ ‘샤오훙수에서 가장 실행력 강한 남자’ 같은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2022년 12월 7일, 남성은 1년간의 변화 과정을 담은 짧은 영상을 샤오훙수에 게재했다. 그의 피땀 눈물이 섞인 영상은 공개 후 7만 6천여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팔로워 수도 14만 9천여 명으로 급증했다. 이미지 대변신에 성공한 그에게 몇몇 브랜드는 광고·협찬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학생샤오아이’ 변신 뒤에 숨은 이야기
남성의 변신이 화제가 된 것은 결코 의외가 아니다. ‘변신’은 중국 생태계에서 방대한 트래픽 유입을 이끄는 핵심 키다. 특히 뷰티와 패션 분야에서, 이미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이 소재를 활용해 팔로워 증가를 이뤄냈다.
사진 틱톡 @爆改素人計劃
2019년, 틱톡에서는 ‘일반인 대변신 계획(@爆改素人計劃)’이라는 닉네임의 크리에이터가 단기간에 높은 인기를 끌었다. 이 크리에이터는 음식 배달원, 매장 점원 같은 평범한 일반인을 다양한 스타일링으로 180도 변신시켜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했다. 1분 분량의 영상에는 일반인의 변신 전 모습, 메이크업과 스타일링 과정, 변신 후 모습이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춰 공개됐다. 카스 데이터(卡思數據)에 따르면 해당 크리에이터는 첫 번째 영상 업로드 후 3개월 만에 약 40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변신이 새로운 소재가 아님에도 남성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이용한 SNS 플랫폼 샤오훙수의 영향이 크다. ‘학생샤오아이’의 인기는 ‘샤오훙수’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중국의 모든 유행은 샤오훙수에서 시작된다
2013년 해외 직구 가이드 앱으로 시작한 샤오훙수(小紅書)는 오늘날 패션·뷰티·음식·여행 등을 망라하는 중국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샤오홍수 이용자들은 사진·글 ·영상· 라이브방송 콘텐트를 만들어 본인의 일상생활을 다른 이와 공유한다.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는 2억 명을 넘어섰으며, 엄청난 트래픽 파워로 중국의 각종 유행과 트렌드를 선도해 ‘중국판 인스타그램’이라고도 불린다.
사진 샤오훙수
여타 SNS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샤오훙수는 이용자 간 상호 교류 의지와 커뮤니티 충성도가 강하다. 이용자의 72%가 자기표현에 거리낌 없는 Z세대(90년대~00년대생)이고, 상당수의 콘텐트가 고민 상담, 정보 요약 및 전달 등에 특화됐기 때문이다.
‘학생샤오아이’의 모든 변화는 샤오훙수 이용자의 조언과 지시를 통해 이뤄졌다. 누리꾼은 본인의 의견이 수용돼 남성이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했을 때 일종의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성의 스타일에 대해 의견을 내는 누리꾼들. 사진 샤오훙수 @小艾同學 댓글 창
뷰티, 패션, 다이어트 등에 관심 있는 여성 이용자가 많은 것도 한몫했다. 첸과데이터(千瓜數據)에 따르면, 샤오훙수의 여성 이용자 비율은 70%가 넘는다. 남성의 대변신을 가리켜 ‘샤오훙수에 있는 100명의 여자친구에게 치장된 결과물’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커뮤니티 기능 강화를 위해 샤오훙수는 최근 앱 내 그룹 채팅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17일 현지 언론 테크싱추(Tech星球)에 따르면, 샤오훙수는 ‘그룹 채팅 광장(羣聊廣場)’이라는 기능을 새롭게 출시했다.
그룹 채팅 광장에는 직장생활·육아· 맛집·뷰티 등 20개 카테고리로 분류된 다양한 그룹 채팅방이 존재한다. 샤오훙수 이용자는 여러 개의 그룹 채팅방을 만들 수 있으며, 본인이 올리는 게시글에 관련된 그룹 채팅방 링크를 삽입할 수 있다. 이로써 또 다른 ‘학생샤오아이’가 등장했을 때, 이용자들은 댓글 창이 아닌 그룹 채팅방에서 실시간으로 본인의 의견을 쏟아낼 수 있게 됐다.
샤오홍수 스타일로 글 좀 써줘, 눈에 띄게 이모티콘 많이 넣어서.
한편, 샤오훙수도 여러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챗GPT 열풍이 불자, 샤오홍수에서도 챗GPT를 활용해 를 만드는 튜토리얼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챗GPT가 샤오훙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챗GPT의 도움으로 생산이 쉬워지면 샤오훙수가 더 큰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반면, 인공지능(AI)이 샤오훙수의 독특한 사용자 창작 (UGC) 문화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된다.
권가영 차이나랩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