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 꿔서라도…과감한 투자로 초격차 베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삼성전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0조원 안팎의 반도체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반도체 혹한기’에도 초격차 투자를 통해 메모리 분야에서 경쟁사를 따돌리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대만 TSMC에 대한 추격 고삐를 죄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전날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린다고 공시한 사실을 두고 반도체 업계는 물론 금융 시장까지 술렁이고 있다. 자금 차입 기간은 오는 17일부터 2025년 8월 16일까지다. 이자율은 연 4.6%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삼성전자는 그동안 외부 차입 없이도 조 단위 투자를 진행해왔다. 곳간도 넉넉하다.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 및 단기금융상품은 128조원(연결 기준)에 이른다. 이만한 ‘현금 부자’가 없다. 다만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어, 여기에서 20조원 이상은 삼성디스플레이의 자산이라는 의미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자산 대부분이 해외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금을 들여오는 건 환 리스크도 있다”며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자회사에서 조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 측도 “금융기관보다 자회사에서 차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연결재무제표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5조9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3.6% 늘었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애플 아이폰14프로에 패널 공급을 확대하는 등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호조세 덕분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에 차입한 20조원을 포함해 올해에만 최대 50조원대 자금을 반도체에 투자할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시설투자 금액은 53조1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90%인 47조9000억원이 반도체에 투입했다. 최근 3년간 반도체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비용은 평균 각각 41조4600억원, 22조9100억원에 이른다. 〈그래픽 참조〉

올해에도 이런 기조를 이어간다. 삼성 측은 이날 “올해 전체 투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메모리의 경우 지난해와 비슷하며, 파운드리도 평택캠퍼스와 미국 테일러 공장의 생산능력 확대 중심으로 투자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임직원 설명회에서 “무모하고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구체적으론 평택캠퍼스 3·4라인 인프라 확충과 5라인 조성, 극자외선(EUV) 장비 도입 등에 주로 투자한다. 테일러 공장의 경우 연내 완공을 목표로 클린룸 확보 등에 집중할 전망이다. R&D 투자도 이어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 기반으로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양산에 들어갔다. 이어 오는 2027년 1.4나노 공정 도입을 선언한 상태다.

여기에다 파운드리 세계 1위 TSMC의 견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TSMC는 전날 미국 애리조나 공장 투자금을 최대 35억 달러(약 4조5000억원)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비상수단’을 동원할 정도로 투자를 적극적이고 빠르게 해야 한다는 시그널”이라며 “특히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와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늘어나며 투자 속도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TSMC가 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이니 삼성 파운드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최첨단 미세공정뿐 아니라 레거시 공정까지 포트폴리오를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례적인 차입 소식에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1000원(-1.58%) 하락해 6만2200원으로 마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