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장애도 꺾지못한 만학도의 꿈 "마음의 눈으로 이해했죠"

중앙일보

입력

15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졸업식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15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졸업식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중증 청각장애와 경증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박성태(59)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까지 여의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10년 전 문해교육 기관인 상일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글을 몰랐다. 학교에 다니면서 박씨는 한글도 배우고 영어까지 배웠다. 잘 모르는 단어는 사진을 찍은 뒤 흐릿한 눈으로 익혔다. 박씨를 가르친 정선미(58) 상일학교 교장은 "'아' 소리 내는 법부터 가르쳤는데, 이제는 영어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대답할 정도가 됐다"고 했다.

박씨는 15일 서울시교육청이 개최한 ‘초·중 학력인정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배움의 기쁨을 시에 담았다. “듣는 것이 어렵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도 공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마음으로 듣고 눈으로 읽으며 나는 이해해.”
박씨에게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어 “괜찮아, 열심히 해”라고 했다.

15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졸업식에서 상일학교 박성태(59)씨가 우등상을 받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씨 제공

15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졸업식에서 상일학교 박성태(59)씨가 우등상을 받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씨 제공

이날 졸업식에서는 박씨와 같은 '늦깎이 졸업생' 40여명이 초등학교·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은 학업 기회를 놓친 성인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번이 열두번째 졸업식이다. 올해 졸업생의 93%가 60~80대일 정도로 대부분 고령층이다.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 얼굴들엔 주름이 가득했다. 졸업생 중 최고령 만학도인 김영자(91)씨가 대표로 교육감 표창장을 받았다.

노년의 졸업생들은 졸업식 내내 울고 웃었다. 윤상숙 씨는 '남편에게 쓰는 편지'라는 제목의 시를 낭독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연애할 때 남편이 군대에 가자 이모가 대신 편지를 써줬다”며 “첫 손자를 보고 3년 후에 떠난 당신, 이제야 내 손으로 편지를 씁니다”라고 읽자 다른 졸업생들도 눈가를 훔쳤다.

김정희(85)씨는 고령으로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하지만 보행 보조기를 끌고 매일 같이 학교에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여든 나이에 꿈꾸던 중학교를 졸업하게 됐다”며 “집안이 가난해 공부할 시기를 놓쳐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면 슬펐다”고 했다. 이어 “졸업은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계속 공부해 고등학교, 대학교 가는 날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졸업식에서 서현학교 윤상숙 씨가 남편에게 쓰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15일 오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 졸업식에서 서현학교 윤상숙 씨가 남편에게 쓰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손수연(69)씨는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으면서도 학교를 다닌 끝에 초등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죽기 전에 학교에 다녀보고 싶다”는 꿈 때문이었다. 그는 “하늘나라 문 앞까지 갔다 오니 죽기 전에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을 이겨낸 것도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2학년도까지 문해교육 프로그램 졸업생은 7609명에 이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야 창의적 상상력이 나온다. 스스로 즐거워 배우는 만학도들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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