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긴급 출금' 직권남용은 아니다"…'수사무마' 이성윤도 무죄

중앙일보

입력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이 무죄 선고가 난 뒤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뉴스1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이 무죄 선고가 난 뒤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뉴스1

2019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조치는 위법하지 않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법원은 긴급 출국금지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지 못했던 상황은 인정하면서도, 관련자들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할지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옥곤)는 이규원 춘천지검 검사,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본부장,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이 검사에 대해서는 자격모용(冒用) 공문서 작성 등 일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개월형을 선고유예 했다.

이규원 검사(맨 앞)는 징역 4월에 선고유예,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푸른색 넥타이)과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이규원 검사(맨 앞)는 징역 4월에 선고유예,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푸른색 넥타이)과 차규근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이 검사 등은 2019년 3월 김 전 차관이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하자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출국금지한 혐의로 기소됐다. 차 전 본부장은 김 전 차관의 출국 정보 등을 무단으로 조회하고, 이 전 비서관은 당시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있던 이 검사와 차 전 본부장 사이를 조율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일반 출국금지 등 적법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도 무리하게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김 전 차관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고 인천공항 출입국 직원 등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며 세 사람의 직권남용 혐의를 강조했다.

긴급 출국금지는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가 증거 인멸 또는 도망할 긴급한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지는 조치로, 일반 출국금지보다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

법원 “그릇된 선택…형사처벌 대상인지는 엄격하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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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출금조치) 당시 파악된 사실관계만으로는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객관적·합리적으로 뒷받침될 만큼에 이르지는 못했다”며 검찰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봐야 할 상황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긴급 출국금지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사후적으로 위법부당하다고 판단된 직무집행을 모두 (직권남용) 처벌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들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할지는 당시 직무 행위의 목적과 필요성·상당성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재수사가 임박했던 김 전 차관 사건의 특성상 이 필요성과 상당성이 다소 넓게 인정됐다.

재판부는 “어떠한 범죄 혐의도 없는 무고한 일반인의 출국을 저지한 경우와는 달리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항공기 이륙시간을 불과 1시간 30분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수사대상자가 될 것이 확실한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를 저지한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출국을 그대로 용인했을 경우 재수사가 난항에 빠져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필요성과 상당성도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규원 검사는 온몸으로 제방 틈을 막아 나라를 구한 네덜란드 소년에 자신을 비유하며 “출국금지를 하지 않았다면 검찰 책임론이 떠오를 상황이었다”고 정당성을 소명하기도 했다.

다만 이 검사가 긴급 출국금지 요청 과정에서 서울동부지검장의 대리인 자격을 모용한 서류를 작성해 인천공항 출입국청 담당자에게 보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검사가 사전에 동부지검장에게 승인을 요청한 사실이 없고, 추후 후속 조치를 취한 사실도 없는 점을 고려했다. 이 검사가 출국금지 과정에서 생산된 서류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별도로 보관한 공용서류은닉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검사에 대한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기습적인 심야 출국 시도에 대응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관련 서류들을 작성·행사하는 범행에 이르게 됐고, 그 과정에서 법무부와 대검찰청 지휘부의 승인이 있었다는 취지를 전달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는 승인 요청서를 ‘수사기관의 장’ 명의로 제출하게 돼 있어 이를 지키려다가 범행에 이르게 된 사정도 고려했다.

이성윤 수사 무마 의혹도 무죄…“‘윤석열 정치 검찰’이 보복 기소”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이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이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당시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이 검사에 대한 수사에 돌입하자 이를 무마한 혐의를 받았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서울고검장)에 대해서도 이날 같은 재판부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연구위원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이 검사를 수사하겠다고 하자 외압을 가해 중단시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연구위원이 직접 또는 하급 직원을 통해 안양지청에 수사 무마를 종용했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거조사를 통해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사정이 밝혀지기도 했다”며 일부 통화에 대해서는 안양지청 측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사건을 무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 연구위원의 지시를 받은 김형근 대검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이 이현철 안양지청장에게 전화해 “안양지청에서 해결해달라, 이 보고는 안 받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후배인 김형근이 이런 무례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출국정보 유출 관련 수사 보고서에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써넣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관련 부분 추가 기재’를 요청했을 뿐 ‘특정 문구’를 요청한 게 아닌데 안양지청이 속단한 것”이라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2021년 3월 ‘불법출금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의 관용차를 타고 공수처 청사로 들어가 비공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졌다.

재판 결과를 받아든 검찰은 “1심 판결은 증거관계와 법리에 비추어 전반적으로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항소를 통해 반드시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이 연구위원은 “‘윤석열 정치 검찰’은 검찰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검사들을 정적으로 규정하고, 보복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사용했다”며 “정의와 상식에 맞는 재판을 해준 재판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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