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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 의사 면허 바꿔야” vs “과잉입법”…의료법 개정안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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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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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이상 처벌 시 의사면허 취소’라는 의료법 개정안 조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안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직행하면서다. 의사단체는 “과잉입법”이라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 등에선 “철밥통 면허를 유지하는 의료인들의 특혜를 없애야 한다”며 입법 취지를 옹호하고 있다.

금고 이상 형 선고 시 의사 면허 취소 개정안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3월 본회의 처리를 예고한 의료법 개정안은 일명 ‘중범죄 의사면허취소법’ 또는 ‘면허 결격사유 확대법’이라 불린다. 2021년 2월 복지위를 통과한 이후 2년 가까이 법사위에서 계류됐는데 지난 9일 복지위에서 정춘숙 위원장이 상임위에 직권상정해 무기명 투표가 이뤄줬고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주요 쟁점은 의료인 결격ㆍ면허취소 사유의 범위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사면허 취소 사유가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에 한정돼 있다. 개정안에서는 이를 '모든 법령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대폭 확대했다. 의사가 살인이나 강도, 성폭행 등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다만 의료행위를 하는 도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는 예외로 뒀다.

의협 “교통사고 내도 면허 취소되는 거냐”

2020년 9월 1일 오후 대전에 위치한 한 의과대학에 히포크라테스 선서 비석 앞으로 대학 관계자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2020년 9월 1일 오후 대전에 위치한 한 의과대학에 히포크라테스 선서 비석 앞으로 대학 관계자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어차피 이런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법적 처벌을 받고 윤리위에 회부돼 처벌을 받는다”며 “우려되는 건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때라고 규정돼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었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중 업무상 배임이나 횡령 등 경제사범이 된 경우까지 면허 취소가 될 수 있는 점은 과하다는 주장이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이번 결정에 대해 “그동안 의사 면허 취소 관련 처분이 느리고 부적절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국회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내용 자체보다는 형식의 문제가 컸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전문가 면허 관리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쌍방향 소통을 해야 하는 문제인데 의사단체와 소통을 하지 않고 본회의에 직회부한 건 잘못된 접근이다. 수용 가능성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의 내용도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외국에서는 ‘의료 행위 적합성’을 기준으로 의료인을 평가하고 면허를 준다. 이는 치매 등 의료인의 건강상태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단순히 면허 취소 사유를 ‘중범죄’로 규정한 이번 개정안보다 더 넓은 차원의 접근”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직업군과 형평성 맞춰야”

반면 “의사 특혜를 바로잡기 위한 당연한 처사”라는 게 찬성론의 요지다. 의사 출신인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그동안 여러 사례를 봤을 때 이 법은 통과돼도 의사들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다른 전문직업군과의 형평성 문제를 내세웠다. 정 변호사는 “변호사 같은 경우 변호사 관련 법 위반이 아니어도 집행유예 이상이 되면 면허가 정지되고 회계사나 세무사 등도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자격이 정지되거나 취소된다. 의사는 의료법 위반이 아닐 경우 영향이 전혀 없는데 이는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의사단체에서 ‘경제사범이나 음주운전자까지 면허취소를 당할 수 있어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에는 “의사 단체에서 선동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정 변호사는 “이번에 법이 통과된다면 양형 판단 시 면허 취소 부분이 참작될 수 있다. 즉 범죄 행위의 경위나 정도에 따라서 면허 취소까지 영향을 줄 것인지 안 줄 것인지 판사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의료인이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줄 수 있어 신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수면내시경 여자 환자를 성폭행해 실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의사의 면허조차 제한하지 못해 다시 현장에서 여자환자를 진료하는 천인공노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자격이 없는 의사는 의료현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지사”라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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