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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직후 '강간죄' 검색…부산 돌려차기男 'CCTV 사각 8분'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 30대 남성 A씨가 인적 드문 골목길로 들어서는 젊은 여성 B씨 뒤를 따랐다. 숨죽인 채 뒤를 밟던 A씨는 B씨가 주거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돌연 온 힘을 실어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

뜻밖의 일격에 머리를 맞은 B씨가 복도 벽에 몸을 부딪치며 쓰러졌다. B씨 휴대전화를 빼앗은 A씨는 다시 강한 발길질로 여러 차례 얼굴을 가격했다. 이 장면은 B씨 주거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남았다. B씨가 기절할 때까지 10초밖에 걸리지 않은 무차별 폭행이었다.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A씨가 피해자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다. 사진 남언호 변호사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A씨가 피해자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다. 사진 남언호 변호사

A씨는 의식을 잃은 B씨를 어깨에 들쳐메고 CCTV가 비추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향했다. 약 8분 뒤 A씨는 현장을 벗어난 다음 택시에 황급히 몸을 싣고 도주했다.

출소 2달만 ‘묻지마’ 범행, 숨겨준 건 전여친

12일 부산경찰청 등에 따르면 A씨는 일면식도 없는 B씨를 상대로 ‘묻지마’ 범행을 저질렀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불리는 폭행 사건 피해자인 B씨는 두개내출혈 등 뇌 손상과 이에 따른 오른쪽 발목 마비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범행은 또 다른 폭행 사건으로 대구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던 A씨가 출소 2달여 만에 저지른 사건으로 드러났다. A씨는 또 강도상해 등 재범으로 여러 차례 감옥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 당일 택시를 타고 달아난 A씨는 한때 교제하던 사이인 C씨 집으로 달아났다. C씨는 A씨가 달아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숨겨주고, 범행 이튿날인 그해 5월 23일 경찰이 들이닥치자 A씨가 창문 밖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다. C씨는 탐문 수사 중인 경찰에게 A씨 이름을 고의로 잘못 알려주는 등 거짓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A씨가 쓰러진 피해자를 향해 재차 발길질을 하고 있다. 사진 남언호 변호사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A씨가 쓰러진 피해자를 향해 재차 발길질을 하고 있다. 사진 남언호 변호사

A씨는 결국 붙잡혀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부산지법은 지난해 10월 “출소한 지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단지 ‘째려보는 느낌에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B씨를 매우 잔혹하게 폭행했다. 법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라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범인은닉ㆍ도피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여친’ C씨에겐 “허위 진술을 통해 수사기관의 실체진실 발견을 적극적으로 왜곡했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2년 과하다”더니 항소심 불출석, 왜?

A씨가 이 판결에 불복하면서 부산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최근 한 달간 두 차례 공판기일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두 번째 기일이 잡혔던 지난 8일에는 불출석 확인서를 당일 제출했다. 불출석 확인서 사유는 ‘투약’인 것으로 파악됐다.

B씨 측은 답답해하고 있다. B씨 변호를 맡은 남언호 로펌 빈센트 대표 변호사는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A씨가 재판 출석에 영향을 줄 정도의 지병을 앓는 예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시간 끌기’ 의혹에 대해 남 변호사는 “비록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미결수여서 구치소에 수감된다. 노역하지 않는 등 교도소와 비교하면 수감 여건이 낫다. A씨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강간죄’ 검색 흔적… 항소심서 ‘8분’ 진실도 다툴까  

사건 당일 A씨가 B씨를 CCTV 사각지대로 옮긴 이후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남 변호사는 “의식을 잃었던 B씨 상의가 벗겨져 있었던 데다, 범행 직후 A씨가 강간죄 관련 처벌에 대해 여러 차례 검색했던 흔적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기소할 때도 검찰이 관련 혐의 적용을 검토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A씨가 기절한 피해자를 들쳐메 CCTV 사각지대로 향하고 있다. 사진 남언호 변호사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 A씨가 기절한 피해자를 들쳐메 CCTV 사각지대로 향하고 있다. 사진 남언호 변호사

하지만 항소심이 진행되며 성범죄 혐의 추가 적용도 검토되고 있다. 지난 8일 A씨 불출석으로 정식 공판은 진행되지 못했지만, 검찰은 B씨 의류 등에 대한 DNA 감정을 의뢰했다고 재판부에 알렸다. 남 변호사는 “CCTV가 비치지 않는 곳으로 B씨를 데려간 것은 의문이다. 당시 성범죄가 저질러졌을 정황이 확인되면 검찰은 공소장 변경 신청을 통해 해당 혐의를 추가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 형사2부(부장 최환)는 다음 기일에는 A씨 출석 여부와 무관하게 공판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판부는 “구치소 측에 긴급한 투약 필요성 등 A씨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해보겠다. 피고인이 없는 상태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면 재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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