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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의 신병기, 물탱크 닮아 '탱크'란 암호로 불렸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고착된 전선을 타개하려고 탄생하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백주에 암살당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즉각 수사에 착수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암살 조직의 배후로 세르비아를 지목했다. 양국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고 7월 28일, 마침내 전쟁이 발발했다.

개전 이유를 고려하면 국지전이 마땅했으나 전쟁은 양측을 지원한 세력들이 대거 개입하면서 순식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했다.

1916년 솜 전투에 투입된 Mk Ⅰ 전차. 참호 지대 돌파를 목적으로 탄생한 최초의 전차로 예상보다 못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무기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순간이었다. 위키피디아

1916년 솜 전투에 투입된 Mk Ⅰ 전차. 참호 지대 돌파를 목적으로 탄생한 최초의 전차로 예상보다 못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무기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순간이었다. 위키피디아

판이 커진만큼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모든 전선 중에서 가장 치열했고 처참했던 서부전선이 대표적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 후에 독일군의 진격이 프랑스 마른에서 멈추었을 때만 해도 잠시 숨 고르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열을 정비한 뒤 착검하고 적진으로 용감히 뛰어나간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관총이 난사하는 총탄이었다. 그렇게 전선은 비참하게 죽어간 시신들로 산을 이루어 갔다.

그때서야 계속 같은 방식대로 싸울 수 없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대책 수립에 나섰다. 그리고 솜 전투가 한창이던 16년 9월 15일, 독일군은 저 멀리에서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물체를 목격했다. 철갑을 두른 거대한 기계가 바로 앞까지 와서 총을 난사하자 이것이 영국군의 새로운 무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군은 참호를 돌파하려고 최초의 전차인 Mk Ⅰ을 비밀리에 제작하여 전선에 투입한 것이었다.

개발 당시에 물탱크 같은 모양을 빗대어 탱크라는 암호로 신무기를 불렀는데, 이후 이 이름은 전차를 의미하는 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극적인 등장과 달리 전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투입한 전차가 총 49대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 기계적 신뢰성이 떨어져 고장도 많이 나면서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전차가 장차전의 주역임이 입증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탕크게베어 M1918 대물소총으로 전차 요격을 시도 중인 독일군. 보다 쉽게 전차를 저지할 수 있게 되자 전차무용론이 등장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탕크게베어 M1918 대물소총으로 전차 요격을 시도 중인 독일군. 보다 쉽게 전차를 저지할 수 있게 되자 전차무용론이 등장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위키피디아

이후 영국은 개량된 Mk Ⅱ, Mk Ⅲ 등을 제작해서 투입했고 Mk Ⅳ, Mk Ⅴ에 와서는 훌륭한 공격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군이 전차를 주축으로 하는 기동전인, 이른바 전격전을 실현하자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강력한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전차는 지상전의 왕자로 불렸고 이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필수 무기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위상이 커지면서 당연히 전차를 잡기 위한 수단이나 대응책도 함께 발달해 왔다. 특히 대전차무기의 성능이 좋아질 때마다 ‘전차무용론’이 급속히 대두하고는 했다. 반면 전차가 담당해야 할 고유의 역할은 그대로이니 대전차무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전차의 위상은 여전하다는 의견 또한 꾸준하다. 이는 사실 Mk Ⅰ이 처음 전선에 등장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논쟁거리다.

1년 만에 바뀐 인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은 이러한 오래된 논쟁의 모습을 극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에서 공여받은 대전차미사일로 러시아군 전차를 차례차례 격파하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전차미사일의 위력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 보통 사람들이 전차가 격파되는 모습을 보았던 적이 없다시피 했기에 각종 매체를 통해 생생한 전투 장면을 접하면서 받은 충격의 강도는 상당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에서 FGM-148 대전차미사일은 '재블린 성인(Saint Javelin)'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동안 러시아가 자랑해 왔던 전차들이 허무하게 터져나가는 모습 때문에 전차무용론이 강력히 대두하기에 이르렀고 일부에서는 전차 시대의 종말까지도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서방도 대전차무기를 최우선 지원 품목으로 꼽았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가까이 된 최근에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FGM-148 대전차미사일은 '재블린 성인'으로 불리며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활약상이 인상적이어서 일각에서 전차무용론까지 대두되었다. 트위터

FGM-148 대전차미사일은 '재블린 성인'으로 불리며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활약상이 인상적이어서 일각에서 전차무용론까지 대두되었다. 트위터

지난 1월 15일, 영국이 챌린저2 전차 12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1월 25일에는 미국이 M1 에이브럼스 전차 31대를, 독일이 레오파르트2 전차 14대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실전에서 성능이 입증된 현존 최강의 전차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보도까지도 나왔다.

전쟁 초에 전차무용론이 거론되었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엄청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전차무기로 전차를 잡는 모습이 뉴스거리가 되어서 그랬을 뿐이지 전쟁이 발발한 이래 전차의 위상이 바뀐 적은 없었다. 사실 개전 초부터 우크라이나가 지원을 가장 많이 요청했던 무기 중 하나가 전차였다. 그동안 서방은 확전을 우려해 동유럽 나토 회원국이 보유한 구소련제 전차를 제공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미국은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일각에서 전쟁의 향방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불과 1년 전에 전차무용론까지 나왔던 사실을 상기하면 엄청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은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일각에서 전쟁의 향방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불과 1년 전에 전차무용론까지 나왔던 사실을 상기하면 엄청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그러다가 2022년 10월경부터 바흐무트 일대를 정점으로 전선이 정체되고 소모가 극심해지자 서방이 이를 타개할 대안으로 전차 공급에 나섰다. 그렇다고 일부의 호들갑처럼 게임 체인저가 될 수는 없다. 제공되는 전차가 현존 최강이라도 무적은 아닌 데다 수량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전차를 격파하는 부대에게 보상금을 주겠다고 할 만큼 러시아가 심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처럼 무용론이 나온 지 불과 1년 만에 게임 체인저로까지 언급된다는 것은 전차가 여전히 전장을 주도할 무기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성능이 향상되어왔지만 100여 년 전 처음 등장한 무기가 여전히 전선에서 개발 당시의 목적대로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그만한 위력과 가치가 있다는 증거다. 이를 기반으로 추론하자면 전차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래 활약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논쟁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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