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너희도 느낀 거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6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주문을 외워 보자 야발라바히기야 야발라바히기야…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도 갖고 싶었지만 너무나 원했던 것은…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가수 이승환이 1993년 발표한 노래 ‘덩크 슛’의 하이라이트다. 지난달 4일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는 내내 이 구절이 입안을 맴돌았다. 원작 만화 ‘슬램덩크’가 국내 출간된 시점은 92년. 이 시기 이승환뿐 아니라 수많은 청소년의 소원은 ‘덩크 슛’이었고, 거리만 나서면 농구공 튀는 소리가 들렸다.

만화 ‘슬램덩크’ 열풍은 세대 불문
26년 전 대사·패션에 여전히 ‘심쿵’

약체인 북산고 농구부가 최강 산왕공고를 상대로 전국 제패를 꿈꾸며 벌이는 한판승. 9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아이콘, 만화 ‘슬램덩크’가 26년 만에 또다시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자)’를 낳고 있다. 9일 기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누적 관객 수는 250만을 돌파했다. 오리지널 31권을 재편집한 슬램덩크 20권짜리 세트 단행본 판매 부수는 3월 초 100만 부를 넘긴다는 예측이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오픈한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의 13일간 누적방문객 수는 1만8000명, 일평균 매출액 1억원. 98년 방영된 SBS TV판 ‘슬램덩크’의 주제곡 ‘너에게로 가는 길’을 불렀던 가수 박상민의 공연이 예정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 크레이지 포 유 상영회’ 티켓은 순식간에 완판되고 암표까지 돌았다.

3040세대가 자신들의 찬란했던 청춘을 떠올리며 극장에서 남몰래 눈물 흘리는 거야 당연하다 치고. 1020세대 ‘슬램덩크현상’의 이유는 뭘까. 주변의 20대 슬친자들에게 물어보니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에 감동했다”고 답했다. 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들이 거듭되면서 대충 포기하며 살고 싶었던 마음이 북산고 5인방(강백호·서태웅·송태섭·채치수·강대만)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통해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는 얘기다.

“집중해. 경기의 흐름은 우리가 바꾸는 거야” “왼손은 거들 뿐” “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요? 나는 바로 지금입니다”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난다”. 슬램덩크의 유명 대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심쿵’이다.

그런데 이것뿐일까? 사실 야구선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신을 외치는 주인공은 수없이 존재했다. 그런데 유독 ‘슬램덩크’ 캐릭터들에 미친듯이 빠져드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걸 단순히 Z세대 특유의 ‘복고 트렌드’라고만 설명하기엔 좀 부족하다. 할머니의 옷장·부엌을 뒤지며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입맛을 즐기는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만화 ‘슬램덩크’는 26년 전 그림이지만 주인공들의 패션 스타일은 요즘 힙합 스타 뺨치게 폼 난다. 미안한 말이지만 90년대 이전까지 농구선수 유니폼은 ‘빤스’와 ‘난닝구’ 수준으로 짧고 몸에 붙었다. 전설의 농구선수 이충희·김현준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서장훈·현주엽이 활약하던 90년대로 가면서 달라졌다. 암홀(상의에서 팔을 끼는 부분) 라인은 여유 있게 늘어졌고, 바지 길이도 무릎까지 길어지고 헐렁해졌다. 여유와 멋을 갖게 된 유니폼은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도 변했음을 상징한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자체를 즐길 줄 알게 됐다는 것. 만화 ‘슬램덩크’는 이 변화의 선두에 있었다. 북산고 5인방의 자유분방한 머리 스타일만 봐도 개성 넘치지 않는가. 화룡점정은 나이키 에어조단이다! 그 시절 강백호가 신었던 에어 조던1을 흠모하지 않았던 청춘이 있을까.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됐을 때, 세대 불문하고 콘서트장도 아닌 극장에서 “에오~”를 떼창했던 이유는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개성 만점 패션 스타일이 시대를 앞선 아티스트의 매력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금, 1020 슬친자들은 3040세대의 그 시절 ‘스웩’에 빠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