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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이수만·방시혁 대 카카오

중앙일보

입력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회사의 최대 주주인 창업자가 기업에서 쫓겨난다는 건 드라마 같은 일이다. 부실기업도 아닌데 말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이자 최대주주(18%)인 이수만 프로듀서가 비슷한 상황에 몰렸다. 그는 K팝을 글로벌 산업으로 만든 선구자다. SM은 그의 이름 수만에서 따왔다. 그런데도 회사에서 ‘비자발적 퇴진’을 당했다.

그는 회사에서 공식 급여를 받는 대신 프로듀싱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받았는데, 규모가 컸다. 2021년에만 240억원이다. 라이크기획이라는 회사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개인사업자 이수만의 상호일 뿐이다. 2020년 SM은 803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라이크기획(이수만)엔 129억원이 지급됐다. 창의적 작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했지만 주주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어느새 주주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됐다.

명성 얻었지만 주주 신뢰 잃은 이수만  

지난해 3월 SM 주총에선 회사가 제안한 이사와 감사 선임안이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 1% 지분밖에 없는 얼라인파트너스 측 인사가 감사로 선임됐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얼라인의 손을 들어줬고 찬성률은 80%를 넘었다. 명성은 얻었지만 인심을 잃었다고 할까. 얼라인의 압박에 SM은 지난해 10월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연말에 조기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계약 종료가 되면 이수만은 대주주일 뿐이다. SM 등기이사는 2010년에 그만뒀다.

SM 경영진은 지난 3일 기업 설명회에서 SM 3.0 계획을 발표했다. 이수만 의존에서 벗어나 멀티 프로듀싱을 지향하고 순익의 20%를 배당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1%의 지분밖에 없는 행동주의 펀드가 1년 만에 SM 이사회를 장악했으니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만이 임명한 것이나 다름없는 공동대표 두 사람도 얼라인 편에 섰다. 과거 불투명한 거래와 관련해 소송도 불사한다는 얼라인의 압박이 주효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경영진이 등을 돌리게 한 것도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이기훈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7일 자 보고서에서 “회사의 성과를 주주 및 임직원들과 나누지 않았던 것이, 그리고 충분히 고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수많은 골든타임을 놓쳐왔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이수만 지분 대신 신주 취득으로  

여기에 카카오가 등장했다. 2172억원을 들여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전환사채를 인수해 2대 주주로 올라선다. 카카오는 SM 지분 확보를 위해 이수만과 협상을 해왔는데, 신주를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수만의 실책과는 별개로 카카오의 행동이 ‘빈집털이’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이수만 측도 반격에 나섰다. 카카오에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다음 달 주총에선 기존 이사 4명의 임기가 모두 만료되는데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양측의 표 대결이 예상된다.

하이브 참전하면 ‘K팝 산업의 1차 대전’

여기에 업계 1위 하이브가 이수만의 백기사로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이브는 9일 한국거래소 조회 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에서 “SM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의향은 있다는 것이다. 한다면 이수만의 보유 지분에 추가로 주식을 더 매입하는 형태가 유력하다. 하이브가 정식으로 참여하면 ‘K팝 산업의 1차 대전’이 시작된다.

배신당해 쫓겨났다고 생각하는 창업자 입장에선 복귀와 응징이 우선이다. 주적을 뺀 나머지는 우군이다. 이수만이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에게 SOS를 보냈다면 이는 카카오에 절대 SM을 넘겨줄 수 없다는 선언이다.

방탄소년단(BTS)으로 주가를 높인 하이브지만 SM이 가진 역사와 전통, 소속 그룹은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려움에 빠진 이수만을 구원하고 그의 인정을 받는 K팝 종가집의 정통 계승자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카카오와 SM 연합이라는 강력한 잠재 경쟁자의 출현을 막고 국내 업계를 평정할 수도 있겠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으로부터 1조원을 투자받기로 한 카카오 쪽도 쉽게 물러설 수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을 수 있다. 이번 분쟁은 K팝 산업의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새 국면으로 넘어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분쟁 장기화하면 SM 역량 훼손 우려  

이수만이 방시혁과 손잡고 카카오와 겨룬다면 SM 내부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이 싸움이 길어지면 내부 분열이 심화하면서 SM의 기본 역량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제조업과 달리 사람이 중요한 산업이다. K팝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경영권 분쟁은 조속히 마무리되는 것이 좋다.

글 =김원배 논설위원 그림 = 안은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