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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보다 1억 높은 전세 살아요" 잠못드는 대구 세입자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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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대구한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대구 달서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 92㎡(27평) 전세 세입자인 30대 A씨. 그는 최근 집값이 폭락하면서 밤마다 잠을 설친다. 그는 1년 5개월 전인 2021년 9월 전세금 4억3000만원에 계약해 입주했다. 하지만 현재 매매가가 3억~3억7000만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낮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인 ‘깡통전세’에 사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주면 남는 돈이 없어 ‘깡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매매가가 급락하다 보니 현재 전세 시세도 2억원 정도로 입주 전보다 2억3000만원이 낮다. A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보증보험을 들었지만, 요새 보증사고가 잦아 HUG의 재정이 나빠져 돈을 받지 못할까 걱정이 크다”며 “집 주인이 올해 전세금을 못 돌려줄 수도 있겠다며 집을 내놨는데 보러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A씨 집주인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다. 6년 전쯤 대출을 껴서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4억원에 산 집이 한창때 6억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3억원으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집주인 측은 “높은 대출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데다 전세금까지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오니 집을 내놨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며 “이대로라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역전세’는 전셋값이 하락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전세 계약이 만료된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A씨는 집이 다른 사람에게 거래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고 했다. 새 매수인이 등장해 전세 4억3000만원을 안고 3억원에 이 집을 사게 되면 매수인이 도리어 1억원이 넘는 돈을 받고 집을 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해서다. A씨는 “마음만 먹으면 돈을 받고 집을 산 뒤 나중에 돈이 없다고 발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도 “실제 요즘에 매수인이 전세를 안고 돈을 받고 사는 건수가 있다”며 “세입자가 불안해했지만, 결국엔 거래했다”고 말했다.

서울 한 아파트 부동산 앞에 '급 전세'라고 붙여져 있다. 뉴스1

서울 한 아파트 부동산 앞에 '급 전세'라고 붙여져 있다. 뉴스1

부동산 프롭테크(부동산+기술) ‘호갱노노’에 따르면 최근 3개월(2022년 11월~올해 1월) 간 대구에서 역전세 계약은 1337건으로, 수도권(1만8010건)을 제외하면 부산(1628건)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문제는 향후 2년간 대구에 예정된 입주 물량이 많아 역전세·깡통전세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부동산 R114와 부동산원이 공동 발표한 ‘주택 입주 예정 물량 정보’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대구의 입주 예정 물량은 6만3858가구에 이른다. 대구에선 역대 최대치이자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다.

전문가들은 “규제를 풀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원배 대구경북부동산학회 이사는 “집주인 처지에서는 세를 준 집, 자기가 사는 집 등 2주택자인 경우가 많은데 조정대상지역이면 추가 대출이 어려우니 보증 사고가 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서 숨통을 트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부는 다음 달부터 규제지역 내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이 허용된다고 밝혔다. 최근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현재는 대출이 불가능한 규제지역 내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30%까지 허용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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