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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노동시장 나쁜 관행, 경제단체와 대기업 책임 크다"…경영계 무임승차론 경고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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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 발족 및 킥오프 회의에서 공동 단장을 맡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공동 단장을 맡은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 뉴스1

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 발족 및 킥오프 회의에서 공동 단장을 맡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공동 단장을 맡은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 뉴스1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둘러싸고 경제단체와 대기업의 무임승차론이 대두했다. 대기업 발(發)로 불거지는 각종 문제에 대한 자정이나 개선 노력 없이 요구만 하며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한 공개 경고가 노동개혁을 논의하는 범정부 전문가 위원회에서 잇따라 나왔다.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나온 것으로 보여 향후 노동시장 구조개혁 과정에서 경제단체와 대기업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경영계에 대한 공개 경고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이하 자문단)' 킥오프 회의에서 나왔다. 자문단은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 전반에 관한 문제점을 도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학계를 중심으로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자문 단장인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두 발언에서 "(노동시장의 나쁜 관행은) 1차적으로 경영자 단체, 원청사(대기업)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계가 책임을 다해야) 노동조합에 대한 상생 노력을 요구할 수 있다"고 통박했다. 사전에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없던 내용이다. 조 교수는 "회의 전 자문위원들과 논의해서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단 내에 소분과로 원하청 상생 협의, 비정규 미조직 근로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방안에 관한 논의체를 꾸려 의제로 다루기로 한 것도 이런 경고와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보수 진영의 좌장급 학자의 경고라서 의미가 남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임원은 "경사노위가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위상을 고려하면 흘리기 힘든 워딩"이라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 경영계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이런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경영계의 적극적인 자정 노력과 솔선수범을 주문하고 촉구한 것이 아니겠냐"(대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발족식 및 첫 회의에서 위원장을 맡은 이재열 서울대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발족식 및 첫 회의에서 위원장을 맡은 이재열 서울대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내에서도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둘러싸고 경영계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부상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전언이다.

지난 2일 노동개혁 컨트롤 타워로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본격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순원 부위원장(숙명여대 경영학 교수)은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나 격차, 차별의 책임은 상당 부분 대기업에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중구조 문제를 다룰 것이다. 경제단체가 계속 숟가락 얹기 식으로 방관하는 자세는 용납이 안 된다. 지속해서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고 말했다.

상생임금위 위원들 간에는 "노동시장 구조 전환 요구가 확산하는 최근 몇 년간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들은 개혁을 위한 비전과 콘텐트를 제시하고 못 하고, 단기적 정책 과실 따 먹기에 급급해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에 메뉴를 끼워 넣는 전략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구체적인 논의 방향도 제시되고 있다. 하도급 협력업체 근로자의 고용과 소득 안정을 지원하는 일, 중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고, 퇴직자의 전직을 지원하는 일도 개혁 과정에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라는 것이다. 또 연공형 임금체계 개혁 과정에서 근로자가 부담할 비용과 위험을 어떻게 상쇄할지 고민하는 일도 기업의 몫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비용을 노동계에 전가하면 노동시장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힘의 논리에 따른 착취는 윤 대통령이 꼬집은 노노착취만이 아니다. 기업 간 불공정도 큰 문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기업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KT 우면 연구센터에서 열린 납품대금 연동제 현장안착 TF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KT 우면 연구센터에서 열린 납품대금 연동제 현장안착 TF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연 '납품대금 연동제 로드쇼'에 주요 경제단체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참석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대·중견기업 관련 경제단체는 대거 불참했다. 연동제 현장 안착 테스크포스(TF)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원·하청업체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대금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다. 10월 4일 관련 법이 시행된다. 경제단체의 이런 행동을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이기주의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의 시행조차 훼방을 놓겠다는 의미 아니냐"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안팎에서 경제단체의 무임승차론이 계속 거론돼 왔다"며 "갑질, 중대재해, 불공정 인사관리, 불공정 거래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대기업과 경제단체 차원의 자정·개선 노력은 없이 요구만 하는 행동을 지적하는 목소리"라고 말했다.

정부는 경영계의 이런 행동이 노동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경영계가 솔선수범해서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각종 관행 개선에 나서야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무임승차를 방관하면 자칫 노사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 교수는 "노사관행 개선은 노조만이 아니라 기업의 잘못된 관행도 개선되어야 한다. 자기 요구만 하고 주장만 하면서 배려와 연대가 없는 것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회학 교수는 "윤 정부는 노사 모두에게 빚을 진 게 없는 정부다. 오로지 경제와 미래 한국의 살길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사 어느 쪽이든, 지난 문재인 정부의 민주노총처럼 정부를 상대로 채권자 행세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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