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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中, 미국 주권 위협하면 행동할 것…美 상대로 베팅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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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 워싱턴 의사당 하원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두번째 국정연설을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 워싱턴 의사당 하원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두번째 국정연설을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7일 밤(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두 번째 국정연설은 2024년 대선 도전 선언의 예고편으로 읽혔다.

바이든 美 대통령, 두번째 국정연설 #72분 연설에 중국 3분, 우크라 2분 #지난해보다 외교안보 비중 확 줄어 #재선 도전 앞두고 국내 이슈 집중

연설의 상당 부분은 일자리와 기름값, 건강보험과 경찰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위한 지원, 중국과의 경쟁을 언급했지만, 외교·안보 정책 비중은 지난해보다 확 줄었다. 미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은 하루하루를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며 보내면서도 이번 국정연설은 국내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외교가 강점인 대통령이지만 유권자가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일자리와 에너지 가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한이나 한반도 관련 언급은 없었다.

72분 연설에서 중국을 직접 거론한 시간은 3분 남짓이었지만 상당한 힘이 실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취임하기 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힘을 키우고 미국은 세계에서 몰락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면서 "더 이상은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거론하며 "나는 시 주석에게 우리는 갈등이 아니라 경쟁을 추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중국정책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는 수십 년 만에 중국이나 세계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다"며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고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지점에서 중국과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실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보낸 정찰 풍선을 격추시킨 일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우리가 지난주 분명히 했듯 만약 중국이 우리 주권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우리가 미국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 우리가 미국의 혁신 및 미래를 정의할 산업, 중국 정부가 장악하고자 하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의 미국 내 투자 증진과 대(對)중국 수출 통제 등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활하는 산업 정책을 일각에서 비판하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동맹에 투자하고 우리 첨단 기술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역이용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동맹과 협력하고, 안정을 지키고, 공격을 억제하고자 우리 군을 현대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민주주의는 약해진 게 아니라 강해졌고, 권위주의 정부는 강해진 게 아니라 약해졌다"면서 "중국과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단합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동맹이 나서고 있고, 더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동맹이 비용을 분담한다는 점을 미국 유권자에게 호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태평양과 대서양 파트너 사이에 다리가 형성되고 있고, 미국에 맞서는 이들은 그들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배우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을 상대로 베팅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이 대목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뒤에서 연설을 듣고 있던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도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오는 24일 1주년이 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약 2분이었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정연설에 초대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르카로바 대사를 향해 "미국은 당신의 나라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단결돼 있다. 우리는 필요한 만큼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 달여 전 같은 자리에서 연설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합하고 글로벌 연합을 구축했으며, 푸틴의 침략에 맞섰으며,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문제에서는 지난 2년간 경제 성과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인프라법, 반도체 및 과학법 등 입법 성과와 일자리 창출, 인플레이션 하락세 등을 부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년 전 우리 경제는 휘청였다"면서 "오늘 우리는 기록적인 1200만 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이는 어느 대통령이 4년 동안 만든 것보다 2년간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50년래 가장 낮은 실업률 3.4%, 80만 개 제조업 일자리, 1000만 건의 신규 창업 신청, 고점 대비 1갤런(3.78L)당 1.5달러 내린 기름값 등 구체적 수치를 들어 경제 성과를 알리기도 했다.

이날 국정연설의 키워드는 12번이나 등장한 "일을 마무리하자(Let's finish the job)"였다. 건강보험 개혁, 부자 과세, 반독점, 주택 공급, 보육, 일자리, 경찰 개혁, 총기 규제 등을 언급하며 "일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야당인 공화당의 협치를 압박하면서 과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경제 정책과 국정 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결과가 나오는 정서를 고려한 메시지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의 경제 계획은 잊힌 곳과 사람들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난 40년간 경제 격변 속에 너무 많은 사람이 버려지거나 투명인간처럼 취급됐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서 시청하고 있는 당신일지 모른다"면서 중산층을 위한 경제 재건을 약속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 뒤로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나란히 앉았다. 야당인 공화당의 하원 선거 승리로 지난해와 달라진 구도다. 바이든 대통령은 "싸움을 위한 싸움, 권력을 위한 권력, 갈등을 위한 갈등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협치를 촉구했다.

이날 국정연설에는 팝가수 U2의 보노, 경찰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의 부모, 캘리포니아 총기 난사 피해를 줄인 중국계 청년, 홀로코스트 생존자 등이 초대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표적 격전지로 분류되는 위스콘신주를 8일, 플로리다주를 9일 방문하며 재선을 향한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미국과 경쟁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응수했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줄곧 미ㆍ중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나 도전이 아니라 미ㆍ중이 각각 성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왔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경쟁을 회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지만 경쟁으로 모든 미ㆍ중 관계를 정의하는 데 반대한다.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한 나라를 헐뜯고 먹칠하고 다른 나라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제한하며 심지어 전세계 산업체인과 공급체인을 침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데 반대한다”며 미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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