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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디스인플레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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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나스닥 지수를 단번에 2% 끌어올린 마법의 단어가 있다.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다. 이날 기준금리 결정 회의를 마치고 나온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45분간 회견에서 이 단어를 15번 말했다. “가장 환영할 만한”, “좋은”, “대단한” 같은 요란한 수식어와 함께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도, 디플레이션(물가 하락)도 아니고, 도대체 뭐길래 ‘세계 경제 대통령’ 파월을 흥분하게 한 걸까. 디스인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과 비슷하게 읽히지만 뜻은 엄연히 다르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긴 하지만 그 폭이 점차 줄어드는 걸 말한다. 예컨대 전년 대비 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3%로 내려가면 디스인플레이션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물가 상승률이 -1%, -2%로 추락하면 디플레이션이다. 디스인플레이션과 달리 임금과 물건값 모두 내려가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뜻한다.

미국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때는 1980년 후반과 2000년대 사이다. 폴 볼커 전 Fed 의장이 ‘인플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다. 볼커가 금리를 연 20%까지 끌어올리는 극약 처방을 한 덕에 물가는 진정됐다. 중앙은행은 여유롭게 통화정책을 펼쳤고, 미 경제는 황금시대를 누릴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9.1%에 달했던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월 6.5%로 내려앉았다. 여전히 높지만 상승 속도는 더뎌졌다. 파월이 이런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에 흥분하는 건 당연하다.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여서다. 금리 인상 행진이 끝을 향해 간다는 기대에 시장은 환호했다.

하지만 안도할 때는 아니다. 주춤한 물가지표에 금리를 섣불리 내렸다가 초고물가 역풍을 불러온 아서 번즈 전 Fed 의장(1970~78년 재임), 거품을 꺼뜨리겠다며 금리를 지나치게 올렸다 ‘잃어버린 20년’을 불러온 미에노 야스시 전 일본은행 총재(1989~94년 재임) 등 디스인플레이션 가면에 속아 잘못된 선택을 한 사례는 무수하다.

저 멀리 언덕에 서 있는 게 개(디스인플레이션)인지, 늑대(인플레이션)인지, 더 무서운 호랑이(디플레이션)인지 아직은 결론 내기 이른 시간이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