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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형준 "비열한 공작" 말에 명예훼손 소송…교수 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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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특별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지원 특별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이 자신의 자녀 입시 의혹을 제기한 교수에 대해 ‘비열한 선거공작’ ‘흑색선전’이라고 말한 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해 허용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1단독 이준구 판사는 지난 2일 김승연 전 홍익대 미대 교수가 박 시장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김 전 교수는 2021년 3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 시장(당시 후보) 딸이 20여년 전 홍익대 미대 입학 실기 시험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상대 후보를 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이를 근거로 기자회견을 여는 등 논란이 커지자 박 시장도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대책위원회 성명을 내는 등 해명에 나섰다. 김 전 교수는 이 때 나온 표현들을 문제 삼았다.

김 전 교수는 박 시장 측이 자신을 ‘기억이상자, 궤변을 하는 사람, 편집증 환자, 하루가 멀다하고 매번 기억이 바뀌는 사람’ 등으로 표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시장과 당시 선대위 총괄본부장·대변인이었던 하태경 의원, 김소정 국민의힘 부산시당 대변인에게 4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시장 후보는 공직 적격 여부 검증 문제에 있어 공적인 존재고, 김 교수의 의혹 제보는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한 발언”이라고 전제하고 박 시장 측이 낸 성명은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해 허용되는 정치적 문제 제기 범위 내”에 있으며 “선대위의 입장을 유권자인 국민에게 알리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이준구 판사는 판결문에서 “정치인의 정치적 주장에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사적인 과장 표현은 용인될 수 있다”며 “국민도 그런 주장은 정치공세로 치부할 뿐 그대로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승연 전 홍익대 교수는 방송 등을 통해 박형준 부산시장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3월 김 전 교수가 등장한 방송 캡처.

김승연 전 홍익대 교수는 방송 등을 통해 박형준 부산시장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3월 김 전 교수가 등장한 방송 캡처.

정치인이 하거나 들은 말은 대개 공적 사안에 대한 것으로 여겨져 명예훼손으로 잘 인정되지 않는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년 전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자신을 ‘조국 똘마니’라 부른 게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의정부지법 남양주시법원은 “김 의원의 정치 이력·활동에 대한 의견 표명”이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의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해 대법원은 “공적 인물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견교환과 논쟁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이라며 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판사 출신 황정근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해당 사안이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췄는지를 본다”며 “공인과 공적 관심·이익에 관한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과 비판은 폭넓게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 명예훼손이란 이름으로 소송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득달같이 소송을 걸고 법원까지 끌고 와 떼를 쓴다”며 “가짜 뉴스로 상대의 명예를 훼손할 때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 상대 진영의 논평에 대해선 명예훼손이라고 소송을 남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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