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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네덜란드·日, 반도체 제재 연합에…中 기술 20년 뒤쳐질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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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8년 4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8년 4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중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20년 이상 뒤처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시행 중인 초강력 대중(對中) 수출 통제 조치에 네덜란드와 일본이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네덜란드와 일본이 가진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에 접근할 길이 막히면서, 첨단 반도체를 구하거나 자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지난주 네덜란드·일본이 미국과 함께, 중국의 특정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기로 합의하면서 중국의 희망을 없애버렸다”며 “외국 기술이 없으면 중국이 잃어버린 반도체 기반을 되찾는 데 최소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네덜란드와 일본은 미 워싱턴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주재로 열린 3국 회의에 참석해, 현재 미국이 시행 중인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 동참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한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과 수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업체를 보유한 네덜란드와 일본에 미국과 같은 행보를 보여줄 것을 촉구해왔는데 워싱턴 회의에서 이를 합의한 것이다.

지난 2019년 4월 네덜란드의 ASML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노광장비를 조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9년 4월 네덜란드의 ASML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노광장비를 조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조치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20년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 규제에 나선 이후로 중국은 이른바 비(非) 미국산 반도체 공급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와 일본이었다.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선도하는 네덜란드와 일본을 통해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드는 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SCMP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21년에만 네덜란드 노광장비 기업 ASML로부터 21억7000만 달러(약 2조7146억원)어치의 칩 제조 장비를 사들였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일본이 대중 수출통제에 동참하면서 이러한 중국의 우회 전략이 막힐 가능성이 커졌다. 레슬리 우 대만 반도체산업 컨설턴트는 SCMP에 “미국·네덜란드·일본의 합의로 지난 2년간 중국 반도체 업계 전체가 생존을 위해 의존해온 비(非) 미국산 장비의 문이 공식적으로 닫혔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네덜란드·일본이 합의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향후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수출을 비롯해 일본의 니콘과 도쿄 일렉트론 등의 중국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미국은 이미 반도체 초미세공정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의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차단한 네덜란드에, 구세대 장비인 DUV의 수출 통제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합의로 인해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한 중국의 AI 개발 부문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자연어 처리, 대화형 AI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미국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A100과 H100은 지난해 8월부터 중국 시장 수출이 금지됐다. 지난해 10월 제재 이후에는 대만의 TSMC가 중국 스타트업에 납품하던 AI GPU 생산을 중단했다. 중국의 한 AI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설립자는 SCMP에 “미국의 제재로 인해 (GPU와 같은) 고성능 반도체 부족 현상이 임박해 관련 구매 비용이 5~6배 뛰었다”고 말했다.

급해진 중국은 지난달 30일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이 웝크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장관과 통화를 하는 등 반도체 장비 공급망 유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비자 발급을 재개한 것도 일본의 반도체 수출제한 참여를 막으려는 로비성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장 미국과 합의를 이룬 네덜란드와 일본이 기존 방침을 뒤집을 지는 불투명하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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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게 남은 카드는 사실상 모든 걸 자급자족해서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SCMP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제재 속에서 반도체 자립을 달성하고자 1조 위안(약 184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엔 위험성이 크다. 우 컨설턴트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을 수십 년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투자해도 아무런 수익이 없을 수도 있다. 비효율적 접근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으로선 시장의 판이 바뀌기 전엔 뾰족한 방법이 없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주류인 실리콘 기반 반도체 시장이 15~20여 년간은 계속 발전할 수 있는데 이 기간엔 중국이 상황을 역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 컨설턴트는 “현재는 주류가 아닌 비(非) 실리콘 반도체나 양자컴퓨팅 같은 신기술이 성숙해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경우에야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에게 기회가 있을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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