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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냉골…미국·중국발 훈풍에 증시는 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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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수출 실적과 동행하던 주가 흐름이 새해 들어 노선을 달리했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반도체 수출 한파에 월간 역대 최대인 127억 달러 적자를 냈다. 하지만 코스피는 연초 이후 11% 상승하며 2500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과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맞물리면서 투자심리가 살아난 영향이다. 조만간 한국 수출이 살아나면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증시의 추가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수출 성적표와 주가 흐름은 비슷하게 움직인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2년까지 하루 평균 수출액과 코스피 지수 간 상관계수는 0.8이 넘는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지표 간 연관성이 크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40% 안팎을 차지할 정도 비중이 커서 수출 실적과 국내 주가와 상관관계가 높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출이 줄어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외국인의 ‘팔자’ 움직임도 커졌다. 무역적자가 발생한 다음 달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확률은 흑자를 낼 때보다 평균 28.3% 증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올해 연초부터 두 지표 간 동행이 일시적으로 깨졌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126억9000만 달러 (약 15조 8800억원)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462억7000만 달러)이 수입(589억6000만 달러)보다 크게 줄어서다. 조업 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도 14.6% 감소했다.

최악의 수출 성적표에도 새해 증시는 ‘반짝’ 오름세다. 한국거래소에서 코스피는 지난 3일 2480.4에 마감했다. 지난해 말(2236.4) 이후 한달여 만에 10.9% 상승했다. 특히 지난달 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수출 기업의 부진한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도 선방했다. 코스피는 실적 발표 기간 이틀(지난달 30·31일) 연속 1% 넘게 하락했지만 2420선을 지켰다.

수출 감소에도 국내 증시가 들썩이는 데는 미국과 중국에서 불어온 훈풍 때문이다. 가장 큰 불쏘시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속도조절이다. 시장에선 최근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디스플레이션(물가 둔화)’ 언급 이후 연내 통화정책 전환(피벗)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달러 약세와 중국의 경기 부양 기대감은 투자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국내 증시에 온기가 퍼지면서 외국인 순매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일 기준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연초 이후 7조8423억원어치(ETF 포함) 순매수했다.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던 지난해 12월(1조6224억원 순매도)과 달라진 모습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앞으로 수출 실적이 개선되면 주가 상승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달 무역적자는 국내 대표 수출품인 메모리 반도체 단가 하락 여파가 컸지만, 올해 2분기 이후 단가 하락이 진정되면 수출 실적 반등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주장이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최근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직접 메모리 반도체 감산 전략을 발표했고, 삼성전자도 공급 조절 동참 의지를 내비쳤다”며 “반도체업계의 공급 조절이 본격화하면 올해 3분기부터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면 수출 부진도 길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선진국의 긴축 충격(긴축 정책에 따른 경기 부진)이 본격화하면 올 상반기까지도 부진한 수출 실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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