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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0원하라”...은행 수수료ㆍ대출금리 인하 경쟁 확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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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은행 창구. 연합뉴스

서울의 한 은행 창구. 연합뉴스

시중은행의 ‘수수료 0원’ 경쟁이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까지 확대되고 있다. 대출금리도 앞다퉈 내리며 적극적으로 ‘고통 분담 마케팅’을 펼치는 모양새다. 금리 상승기에 예대 마진 등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만큼 사회에 이익을 환원한다는 취지지만, 여론 악화나 금융당국ㆍ정치권의 압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노멀' 된 모바일·인터넷 이체수수료 면제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오는 10일부터 만 60세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창구 거래 때 발생하는 이체(송금)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창구 송금 수수료는 금액에 따라 건당 600~3000원 수준이다. 이번 조치를 통해 혜택을 받는 고객은 약 2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신한은행은 추정하고 있다.

지난달 1일 모바일ㆍ인터넷뱅킹 수수료 면제에 이어 창구 수수료 면제도 시중은행 중 신한이 최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금융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 고객들에게도 이체 수수료 면제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고객 중심 경영의 일환으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계속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 온라인 이체 수수료 0원은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고 있다.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KB국민은행(1월 19일), 우리은행(2월 8일), 하나은행(2월 10일)도 모바일ㆍ인터넷 뱅킹 이체 수수료를 없앴다. NH농협은행도 3월부터 모바일에 한해 이체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창구 수수료 면제도 결국 다른 은행까지 확대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업무가 서로 유사한 데다 경쟁 체제다 보니 어느 한 곳이 시행하는 제도는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만 60세 이상 창구 수수료 면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달 새 주담대 상단 1.22%p 하락, 코픽스 하락폭의 24배 

은행들은 대출 이자도 앞다퉈 깎고 있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시장(채권) 금리나 코픽스 하락폭보다 각 은행이 임의로 덧붙이는 가산금리 하락폭이 훨씬 컸다.

지난 3일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기준)는 연 4.95∼6.89% 수준이다. 약 한 달 전인 1월 6일(연 5.08∼8.11%)과 비교해 상단이 0.13%포인트, 하단이 1.22%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픽스(COFIXㆍ자금조달비용지수)는 0.05%포인트 떨어졌다. 상단 기준 하락폭은 코픽스 하락폭의 약 24배다.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과 신용대출 금리도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과 1년물 금리보다 내림폭이 컸다.

은행들이 이런 경쟁에 나선 이유는 지난해 금리 인상기에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두면서 사회적 책임론이 분출했기 때문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평균 전망치는 총 16조5557억원으로 전년보다 13.8%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1~3분기 누적 기준 4대 금융지주의 순이자이익은 약 29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4대 금융지주는 오는 7일부터 연이어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입김도 영향을 미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리 상승기에 은행권이 시장 금리나 차주 신용도와 비교해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지난달 10일)” “은행은 가산금리 조정에 어느 정도 재량이 있다(지난달 13일)”며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예금과 대출 이자 차이를 뜻하는 예대이율 차이가 커서 서민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가세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공공성을 감안할 때 취약차주를 위한 수수료 면제 등 다양한 정책들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민간 주도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 당국 차원의 압박으로 시행된다는 느낌이 좀 강한 것 같다. 은행의 체력을 떨어뜨리거나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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