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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먹어요…거창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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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과일·간식 가득…이웃이 채운 ‘냉장고’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운영 중인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에 주민들이 물품을 채우고 있다. 사진 거창군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운영 중인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에 주민들이 물품을 채우고 있다. 사진 거창군

지난 3일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 1층 출입구.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라 적힌 업소용 냉장고 2개, 서랍형 진열대 1개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남하면'을 강조하기위해 '남하도는'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냉장고에는 계란·두부·동그랑땡ㆍ만두ㆍ치킨너겟 등 냉동식품, 딸기ㆍ사과 등 과일이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진열대에는 쌀· 김·사골곰탕(포장)ㆍ육개장ㆍ카레·소금ㆍ간장ㆍ케첩 등이 정렬돼 있었다. 한방약과·과자 등 간식도 보였다.

이는 모두 남하면 주민들이 하나둘 기부한 물품이다. 공유냉장고 옆 ‘기부나무’에는 “유○○ 어부, 추어탕 5 밑반찬 10” “배○○, 블루베리잼 6병” “○○한과 20봉” 등 후원자와 후원물품 이름이 적힌 사과 모양 명패가 다수 걸려 있었다. 공유냉장고에 필요한 물품을 채우라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에 후원금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이웃 간 ‘정(情)’을 나누는 데 동참하고 있다.

공유냉장고에 쌓인 물품은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공짜로 가져갈 수 있다. 다만 하루 3개까지 허용했다. 주로 노인 등 취약계층이 가져간다. 매월 이용횟수는 100~200건에 이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겐 마을 이장이나 요양보호사가 전달한다. 1~2가지 반찬과 국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노인에 도움이 되고 있다.

경남 거창에 사는 한 독거노인 밥상. 사진 거창군

경남 거창에 사는 한 독거노인 밥상. 사진 거창군

각자 가능한 방법대로…마를 새 없는 ‘정(情)’

‘경남 거창형 공유냉장고’(사진)가 초고령 농촌사회에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거창군은 2021년 4월 2개 면에 공유냉장고를 도입했다. 현재 읍ㆍ면 행정복지센터 12곳과 마을 10곳에 공유냉장고 22개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식이나 식재료만 채워졌지만, 지금은 다양한 생필품까지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 현장 공무원들은 “가져가는 사람만큼 가져오는 사람도 많아 냉장고가 빈 적이 없다”라며 "그만큼 자발적인 참여가 많다"고 전했다.

공유냉장고를 이용한 주민이 매번 도움만 받는 것은 아니다. 남하면 천동마을에 사는 80대 박모 할아버지는 마을 이장을 통해 공유냉장고에서 식재료를 여러 차례 받았다. 박 할아버지는 이에 보답하고자, 지난해 여름 손수 만든 1m 길이의 나무지팡이 50개를 기부했다. 이 지팡이는 공유냉장고 옆에 진열한 지 이틀 만에 동이 났다. 알록달록하고 튼튼한 박 할아버지의 지팡이는 주로 할머니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여름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에 기부된 '나무 지팡이'. 사진 거창군

지난해 여름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에 기부된 '나무 지팡이'. 사진 거창군

가조면에 사는 한 할머니는 공유냉장고에서 반찬을 가져간 뒤 텃밭에서 기른 상추·양파 등으로 채워 넣었다. 다른 주민은 공유냉장고에 있던 도시락을 먹고, 꼬불꼬불한 글씨체로 “잘 먹었사옵니다” 메모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함께 나눌 것이 없다”며 봉지 라면을 사와 공유냉장고를 채웠다고 한다.

“복지안전망 역할…공동체 결속에도 도움”

거창군은 공유냉장고를 지난 2년간 운영한 결과,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공유냉장고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행정은 물론 이웃 간 교류가 잦아지면서 안부를 확인하는 등 복지 안전망 역할도 강화됐다고 평가한다.

거창군 관계자는 “공유냉장고는 수혜자와 공급자가 따로 없다. 도움받고, 각자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우면서 이웃과 이웃을 잇는 공동체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읍·면별 공유냉장고끼리 필요한 물품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교류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 1층 출입구에 있는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 사진 거창군

경남 거창군 남하면 행정복지센터 1층 출입구에 있는 '행복이 남하도는 공유냉장고'. 사진 거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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