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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골병 너무 깊이 들어, 멀어진 지지층 되찾는 게 급선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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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호 13면

취임 100일 맞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당명까지 바꿀 각오로 재창당에 매진해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당명까지 바꿀 각오로 재창당에 매진해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정의당이 풀어진 신발 끈을 다시 조이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이정미 대표 체제가 이달부터 재창당 수순에 돌입하면서다. 이 대표는 오는 11일 재창당추진위를 구성해 직접 위원장을 맡으며 당의 전면적인 쇄신 작업에 나선다. 4일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표는 “당명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올 상반기까지 재창당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를 통해 당원과 지지층의 동력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대표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잇단 참패로 당의 성장 엔진은 사실상 실종됐다. 성 비위 사건과 갑질 논란 등 연이은 악재에 당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까지 불거지며 원내 3당으로서의 존재감도 급속히 약화된 상태다. 정의당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중앙SUNDAY가 이 대표를 만나 위기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극복 방안을 들어봤다.

취임 100일을 맞은 소감은.
“하루하루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취임 다음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진상 규명에 힘쓰다 보니 그새 100일이 지나간 것 같다. 무엇보다 창당 이래 당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대표를 맡게 된 만큼 마음이 매우 무겁다. 임기는 2년이지만 사실상 내년 총선까지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뛰고 있다.”
이정미 대표 체제의 성과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당장의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을 가졌다면 취임하자마자 당에 분칠부터 했을 것이다. 당명도 바꾸고 특권도 내려놓겠다고 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3년 만에 당에 복귀해 보니 그동안 당이 입은 내상이 생각보다 깊더라. 골병이 너무 깊이 들어 장기 치유가 필요한 상황인데 겉모습만 가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지금은 현장을 다니며 당과 지지층의 멀어진 거리를 좁히는 게 급선무다.”

내년 총선까지가 내게 주어진 시간

정의당은 지난해 9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의당의 지난 10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당을 운영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라며 “정의당의 경우 공교롭게도 안 좋은 일이 계속 겹쳤고, 그 상황을 극복할 리더십이 굳건히 서 있지 못해 위기를 더욱 키운 것 같다”고 진단했다.

‘포스트 심상정’의 차세대 리더십을 육성해야 한다는 요구도 적잖다.
“그 부분은 나를 비롯한 중진들 책임이 크다. 지난 총선 때 지역구에서 살아 돌아와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심상정 의원을 능가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했는데 여러모로 부족했다. 개인적으로도 뼈아픈 부분이다. 당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지지자층 입장에서도 기대감은 계속 줄고 꾸지람은 더욱 잦아지는 것 같다.”
10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민주당 2중대’ 논란도 해결해야 할 과제 아닌가.
“요즘엔 ‘국민의힘 2중대’란 지적이 더 많다(웃음). 2017~19년 첫 당대표 시절엔 특정 정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정의당이 사안에 따라 여러 정당과 공조하며 캐스팅보터로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대통령은 야당과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나. 지금 정의당이 할 일은 거대 양당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민생 얘기라면 어느 당과도 협력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재창당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은.
“크게 두 가지 축이다. 우선 기후위기·돌봄 등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통합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다. 또 정의당과 함께할 사람들과 세력 확장을 도모할 계획이다. 다른 당의 재창당 사례를 보면 당 대 당 통합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 당을 환골탈태하는 시도도 있었는데 정의당은 이를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할 생각이다.”

부울경 노동 벨트 뿌리 말라가고 있어

이 대표는 그러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10개를 전략 지역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정의당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중심의 영남 노동 벨트가 중심축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역이 너무 취약해지다 보니 당을 지탱하는 뿌리도 점점 말라가고 있다”며 “이젠 비례의석을 늘리는 전략만으론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내부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정의당의 지역구 의석 확대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부분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당의 존립 근거가 무너진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지역에서 당선돼야 하는 구조다. 이를 깨기 어렵다며 도전하지도 않으면 당을 어떻게 운영하겠나. 힘들더라도 해내야 하는 몫이 있다면 총력을 다해야 한다. 재선 의원을 배출하지 못하는 정당이란 지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당의 어젠다가 실종됐다는 비판도 많다.
“우리 당은 최저 시민소득 도입,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 돌봄 복지국가 등 주요 정책 대안을 줄기차게 얘기해 왔지만 여의도 정치 지형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대선 때도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놓고 선거 내내 싸우지 않았나. 지금도 마찬가지다. 양당에 그만 싸우고 민생을 논의하자고 아무리 설득해도 좀처럼 바뀌질 않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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