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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호의 직격인터뷰

“원전 발전 충분했다면 가스 급등 충격 흡수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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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주한규 원자력연구원장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난방비 급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맹추위 속에 가정마다 평소보다 2~3배 이상 오른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들고 경악하고 있다. 여당은 “지난 정부의 탈원전 및 신재생 확대 정책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을 뒤늦게 떠안은 탓”이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난방비 급등은 무능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난방비 급등은 왜 일어났고, 누구의 잘못일까. 더 나아가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지난달 31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아 주한규 신임 원장을 만났다. 그는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에너지 전문가다. 5년여 전까지만 해도 대학 연구실에만 묻혀 사는 ‘서생(書生)’이었지만, 2017년 5월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탈(脫) 원전 정책을 펴자 이슈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동료 교수들과 함께 탈원전 반대 성명을 내고, 페이스북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올리는 등 현실 참여형 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대선 정국이 열리자 그는 윤석열 대선 후보의 캠프에 영입돼 원자력/에너지정책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정권이 바뀌고 탈원전 정책도 막을 내리면서 지난해 12월 교수직을 잠시 내려놓고 제22대 원자력연구원장에 취임했다.

문 정부, 낮은 가스값 믿고 탈원전 및 신재생 청사진 그려
가스 가격은 항상 요동친다는 점 잊은 채 미래 예측한 오류
원전 중심으로 태양광·풍력 더하는 ‘에너지 믹스’ 정책 펴야
‘RE100’ 한국서는 불가능…원전의 ‘CF100’ 능력 주목해야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지난 정부 기간 탈원전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현실 참여형 학자다. 지난달 31일 대전 원자력연구원 원장실에서 원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지난 정부 기간 탈원전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현실 참여형 학자다. 지난달 31일 대전 원자력연구원 원장실에서 원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난방용 에너지 대부분은 가스

난방비 폭등의 원인이 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가스 가격이 폭등한 게 가장 크다. 여기에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잘못이 배경으로 깔렸다. 국내 난방용 에너지는 연탄·전기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가스가 거의 전부다. 가스는 난방용뿐만 아니라 발전용으로도 사용되는데, 그간 탈원전으로 발전용 가스 사용이 늘어나면서 부족한 가스를 단기 시장에서 구매하게 돼 가스 도입 가격이 크게 올랐다. 원전 발전량이 충분했다면 가스 발전량을 줄여 국제 가스 가격 급등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지난 정부에서 원전 가동률이 오히려 늘었다는 주장이 있다. 팩트가 뭔가.
“잘못된 주장이다. 지난 정부에서 평균 원전가동률은 71%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땐 81%였는데, 작년에서야 그때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명박 정부 땐 원전 가동률이 90%를 넘었다. 2015년 확정한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신규로 가동돼야 할 원전들이 많은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탈원전이 없었더라면 작년에 신한울 1, 2호기 등이 가동됐을 거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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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급등한 가스값이 제때 반영되지 않았던 걸 현 정부가 떠안았다는 얘기인가.
“그래프〈그림〉로 보여드리겠다. 주택용 가스 가격과 가스 도입단가 추이를 보자. 가스 도입단가는 2021년 하반기부터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는데, 주택용 가스 가격은 그 이후로 2022년 4월까지 거의 일정하다가 이후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 동안 가스 가격 급등 요인이 있었음에도 반영을 안 했다는 거다. 지금은 도입가격이 너무 올라 주택용 가스 가격을 안 올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지난 정부 출범 한 달 뒤인 2017년 6월 탈원전 반대성명을 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 가능성과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의 사장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대로 현실화하지 않았나. 그때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약 30% 진행되고 있었던 걸 중단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어 교수들이 저항했다. 돌이켜보면 2016년 즈음 셰일가스 양산의 영향으로 가스값이 아주 쌌다. 지난 정부는 그걸 믿고 신재생에너지를 확 늘리고, 보완 전원을 가스로 해도 된다는 논리로 탈원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가스값은 항상 오르내린다. 가장 낮은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하면 안 되는 거였다.”

에너지 가격 어느 정도는 올려야

비싼 난방비를 이대로 감수해야 하나.
“지난해 말 정점을 찍었던 국제 가스 가격이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까지 내려갔다. 난방비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공사에 미수금 제도라는 게 있다. 그간 시세보다 낮게 잡았던 가스 가격을 어느 정도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이게 있어서 당장 반영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습관이 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에너지 가격을 어느 정도 올려 시장에 신호를 주면서 에너지 효율도 높이고 소비도 절약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제 가스 가격이 또 급등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에너지 안보를 얘기하는 거다.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야 국제 정세 변동에 따른 영향에 둔감할 수 있다. 그 대안이 원자력이다. 원자력이 충분히 있으면 가스 수요를 장기간 예측해 장기 계약 가격으로 들여올 수 있다.”
탄소중립 때문에라도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나라가 적지 않은데.
“에너지를 둘러싼 환경은 나라마다 다르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은 나라들도 풍력이 유리한 나라, 태양광이 유리한 나라 등 제각각이다. 북유럽이 잘한다고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풍력 환경이 좋지 않다. 그나마 태양광 여건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데, 여기에도 간헐성이라는 단점이 있다. 날씨가 나쁘거나 밤이 되면 발전을 못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LNG 발전을 병행하든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2차전지형 ESS는 설치 비용이 너무 비싸다.”
우리나라에 맞는 현실적 에너지 정책은 뭔가.
“결국 원자력이다.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원자력은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와 함께 탄소중립을 위한 효과적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원자력 또한 나라마다 여건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3년에 2기씩 건설해왔기 때문에 공급망이 안정적이고, 건설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미국 경우는 지난 30~40년간 원전 건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대신 풍력이나 태양광은 싸다. 요약하자면 원자력을 중심으로 놓고,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를 붙이는 에너지 믹스(energy-mix)를 잘해야 한다.”
최근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100% 쓴다는 ‘RE100’ 가입을 선언하는데.
“정범진 경희대 교수가 ‘RE100은 재생에너지 사기극 수준’이라고 말하는데, 표현이 강하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RE100이 정말로 실현되려면 ESS를 대폭 확대해야 하는데, 지금 어느 곳도 ESS를 활용해 RE100을 추구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 내에선 불가능하다. 대신 ‘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 에너지’라는 뜻의 ‘CF100’(Carbon Free 100%)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게 바로 원전이다.”

원전 비중 40%대로 늘려야

전체 발전에서 원전 비중을 얼마나 하는 게 좋을까.
“지금 계획은 2035년까지 35%라고 돼 있는데, 40% 이상은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연구개발을 시작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2035년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될 수 있을 거로 보인다. 그러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더 높일 수 있다.”
왜 SMR인가
“SMR은 안전성이 매우 높고 대형 원전과 달리 출력 조정을 하기 쉽다. 이런 장점 때문에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원전은 핵폐기물 문제가 있지 않나. 고준위 핵폐기물의 영구저장소 설치도 어려운데, 임시저장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의 기술로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다. 5㎝ 두께의 구리 용기에 담아 지하 500m 암반에 구멍을 내고 묻은 다음 주변 방수를 위해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질의 광물질로 채우면 된다. 구리는 부식에 아주 강한 물질이다. 철기시대 유물은 제대로 남은 게 거의 없어도, 그 이전인 청동기 유물은 그대로 있지 않나. 벤토나이트는 수분을 만나면 딱딱해져서 물이 침투하지 못한다. 이렇게 3중 방벽을 하면 위험할 일이 전혀 없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반핵운동가들이 위험을 과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주한규=서울대 원자핵공학 학·석사를 마치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퍼듀대에서 원자핵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원자력연구소를 거쳐 2004년 모교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15년 미국원자력학회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 2022년부터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 위원과 외교부 과학기술외교자문위원회 원자력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22대 원자력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