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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시부야 상징, 55년 만에 문 닫는다…'전철계 백화점' 퇴락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渋谷) 도큐(東急) 백화점 앞. 행인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명품 잡화류가 전시됐을 법한 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건물 뒤편에는 불이 환했지만 오가는 직원 하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인기척이 없었다. 일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시부야의 손꼽히는 명소였던 도큐백화점 본점이 문을 닫은 다음날 펼쳐진 스산한 풍경이다.

일본 시부야에 있는 도큐백화점 본점이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55년만에 폐업했다. 1일 텅빈 전시 매대 옆에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일본 시부야에 있는 도큐백화점 본점이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55년만에 폐업했다. 1일 텅빈 전시 매대 옆에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재개발에 밀려…55년 백화점의 눈물 폐업

도큐백화점 본점은 1967년 시부야역 인근에 세워졌다. 도보로 5분 거리인 역과 연결돼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지상 9층, 지하 3층 규모로 한때는 도쿄에서 걸어서 찾아오는 손님이 가장 많은 백화점으로 꼽혔다. 시부야가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패션과 유행의 중심가로 자리 잡는 데도 한몫을 한, 시부야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이런 도큐백화점 본점이 폐업한 건 지난달 31일. 마지막 영업 날엔 손님이 몰려들었다. 영업이 끝나고 철문이 내려올 땐 전 직원이 나와 허리를 숙이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도큐백화점 본점이 폐업을 선언하게 된 건 재개발 때문이다. 모회사는 도큐. 도쿄급행전철주식회사란 사명(社名)을 줄인 것이 도큐다. 도큐는 전철(철도)을 중심으로 한 교통사업과 부동산, 유통업을 벌이고 있는데 인터넷 쇼핑이 늘면서 사업 전환을 모색해 왔다. 요미우리신문은 “역과 가까운 복합 빌딩으로, 집객력이 있는 호텔 및 임차인 유치를 통해 임대료를 벌어들이는 사업모델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큐백화점 본점을 헌 자리엔 오는 2027년 36층짜리 고층 복합 빌딩이 들어선다. 프랑스 루이뷔통 그룹(LVMH) 부동산개발 회사와 도큐, 도큐백화점이 재개발을 한다. 저층엔 상업시설이 들어설 예정인데 백화점이 들어갈지는 미지수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55년만에 폐업한 일본 시부야에 있는 도큐백화점 본점. 도쿄=김현예 특파원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55년만에 폐업한 일본 시부야에 있는 도큐백화점 본점. 도쿄=김현예 특파원

전철계 백화점, 속속 문 닫아

전철회사와 연관이 있으면서 그 덕에 교통 요지인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고 있는 백화점을 일본 언론은 ‘전철계 백화점’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교통 이점으로 황금기를 누렸지만, 최근엔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전철 이용객이 줄어든 데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쇼핑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역세권에 있던 백화점을 재개발하는 곳이 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통 요지에 있는 전철계 백화점은 최근 줄줄이 폐업을 하는 추세다. 닛케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엔 오다큐 백화점이 신주쿠점을 닫았다. 이 자리엔 오는 2029년 지상 48층의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신주쿠역 서쪽의 게이오백화점도 재건축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31일 폐업한 일본 시부야에 있는 도큐백화점 본점 앞.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을 행인들이 바라보고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지난달 31일 폐업한 일본 시부야에 있는 도큐백화점 본점 앞. 폐업을 알리는 안내문을 행인들이 바라보고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일본 내 백화점 점포 수 자체도 줄고 있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백화점 점포 수는 총 185곳. 1999년 311개를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홋카이도에서는 122년 된 후지마루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같은 날 다카시마야 백화점도 도쿄도 다치가와(立川)시에 있는 백화점 영업을 정리했다. 요미우리는 “코로나19 전부터 지방을 중심으로 폐점하다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한 역이 있는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폐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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