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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는 3억인데...'22년째 5000만원' 예금자 보호한도 늘어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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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안석씨는 서로 다른 저축은행 3곳에 계좌를 갖고 있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에 돈을 맡기지만 한 곳에 5000만원 이상은 넣지 않는다. 5000만원은 금융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예금자가 정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금액의 최대한도다. 안씨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일을 돌이켜보면 금융사에 문제가 생겨 내 돈을 떼일 수 있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 한도를 지키려고 한다”며 “한도가 낮아 번거로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0일 서울시내 지하철역에 걸린 시중은행 예금금리 관련 전광판 모습뉴스1

지난달 10일 서울시내 지하철역에 걸린 시중은행 예금금리 관련 전광판 모습뉴스1

금융위원회가 연금 저축에 대해 별도의 예금자 보호 한도 신설 방침을 밝히며 예금자 보호 한도의 상향 여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금리 인상으로 예·적금에 돈이 쏠리며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선 2001년 이후 5000만원에 묶여있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와 예금보험공사 등은 예금자 보호 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오는 8월까지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이나 보호 대상 금융 상품 확대 여부 등을 검토해 복수의 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가 지난달 30일 업무보고를 통해 연금저축에 대해 별도 예금 보호 한도를 신설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개선 방안 논의와 무관치 않다.

예금자 보호 한도는 말 그대로 예금자 보호 제도에 따라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자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한도 금액이다. 은행·보험사·저축은행·증권사 등 대부분의 금융사 원금 보장형 상품에 적용된다. 최근에 금리 인상 여파 및 증시 부진으로 뭉칫돈이 예‧적금에 쏠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는 제도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보장 범위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한 금융회사당 5000만원이다. 지난 2001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된 이후 22년째 제자리다. 이에 그간 커진 경제 규모를 반영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견해가 나온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1년 1만1561달러에서 2021년 3만4984달러로 3배가량 불었다. 또 국내 예금은행의 원화 예금 규모는 지난해 10월 기준 1967조2900억원으로 2001년 1월(398조7882억원) 대비 약 5배 커졌다.

주요국에 비해서도 한도가 낮다. 미국은 25만 달러(약 3억700만원), 독일은 10만 유로(약 1억3300만원)이다. 이들 국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도를 대폭 높였는데, 한국은 변화가 없었다. 이에 국회에서는 한도를 1억원으로 높이자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정부가 쉽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한도 상승 시 금융회사가 나눠 내는 예금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예금보험료는 현재 예금액 대비 은행 0.08%, 금융투자회사·보험사 0.15%, 저축은행 0.4%씩 거두고 있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험료 인상이 금융회사의 부담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비용이 대출 금리 인상 혹은 예금 금리 인하 등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전가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예금자 보호 한도로도 약 95%의 고객들이 보호를 받고 있다”며 “보호 한도를 늘리면 혜택을 받는 건 거액의 현금 보유자나 기업이고, 일반 소비자들에겐 오히려 대출 금리 상승 등에 따른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올릴 경우 제2금융권에서 자금 유치를 위해 무리하게 금리를 높이는 현상이 더 심화하며 금융 시장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이자는 소비자들의 여론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보호 한도 변경 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시장 불안 등의 부작용도 고려해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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