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시론

‘퍼펙트 스톰’에 갇힌 한국경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원장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원장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3년이 지나면서 사실상 풍토병(Endemic)으로 변신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해를 넘기며 세계 경제에 여전히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역병과 전쟁, 여기에 대기근만 있으면 역사책에서나 볼법한 난세의 조건을 다 갖추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2023년 세계 경제는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 당초 ‘V자 반등’이 예상됐던 코로나 이후 경제는 전쟁을 겪으면서 회복세가 억눌리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중국 경제 회복세에도 2% 중반대로 예상한다. 회복은 고사하고 다시 심각한 침체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실제로 유럽 등은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고, 다른 나라들도 침체를 겪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달리 선택지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올해도 국내외 경제 살얼음 예상
시장 변화에 맞는 정책조합 필요
물가·재정·수출 등 총제적 대응을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금리 급상승에 따라 민간 부채 부담이 실물로 전이돼 급격한 침체로 이어지는 위험, 이미 코로나 기간에 엄청난 확장재정으로 홍수 뒤 허약해진 축대 같은 정부 재정에서 오는 정책 딜레마, 그리고 여전히 높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올해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분간 이어질 공급망의 분절화와 국제 공조의 파편화 현상은 낙관적 전망을 망설이게 한다.

경기 침체 전망에도 실업률이 여전히 낮아 정책 당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노동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팬데믹 이후 노동시장 구조가 비대면 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구조적 변화론으로 흔히 설명한다.

그러나 구인난의 배후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팬데믹 이후 여러 이유로 노동시장 진입을 하지 않는 비경제 활동 인구가 증가했다.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국제적 노동 이동, 즉 계절노동과 단기노동도 감소했다. 노동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정성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한국경제는 어떤 부분에 유의해야 할까. 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 경기 둔화, 높은 에너지 가격, 해외 관광 재개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 있다. 대차대조표 재조정에서 오는 충격, 비은행 금융중개 부문의 취약성, 신흥국 외환위기와 선진국 국채시장의 불안 등 단기적 금융 불안에도 유의해야 한다. 회복이 지연됨으로써 매우 민감해진 시장에 대응한 정책조합이 필요하다.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사이의 적절한 안배와 선제적 지침의 합리적 운용이 필요하다.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되 취약층 지원과 미래 성장동력 투자는 지속해야 한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민간 부문의 적응을 고려한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 노력하고, 대외 금융 불안에 따른 변동성 확대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외에도 점검해야 할 대외변수가 많다. 한국에 큰 영향을 주는 중국의 경우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갑자기 전환했다. 이에 따른 충격은 짧지만 크게, 주로 상반기에 집중될 것이다.

부동산 침체가 지속하면서 금융과 재정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올해 내내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다. 천연가스 시장의 구조 변화와 비료 수급 문제로 올해 에너지와 식량 가격은 높은 수준에서 계속 불안정할 것이다. 꼬인 공급망은 점차 풀리고 있으나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에 이어 유럽의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자산 자국 회귀 전략은 한국에 큰 고민을 안겨준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은 올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이전에 종료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환경·인권·디지털·공급망·반부패·조세 등 다양한 의제를 포함하고 있어서 비록 시장접근 분야가 제외됐지만 섬세하게 대응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 조정’ 제도는 오는 10월 모니터링을 시작으로 일정이 시작된다.

미국 콜로라도 강에 후버댐으로 박제된 허버트 후버(1874~1964)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 “모퉁이를 돌면 번영이 있다”는 헛된 희망의 메시지로 후세의 조롱거리가 됐다. 잘만 하면 번영이 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여러 변수를 따져보고 굴절된 현상의 원인을 꼼꼼하게 살피면 큰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갖도록 하자.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