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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딱지 떼고 성공할 수 있을까"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칠전팔기 에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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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카펠 콩쿠르 1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최연소(29세) 서울대 음대 교수 임용, 일본 사이타마현 문화예술재단 선정 현존하는 100대 피아니스트, 아들·딸 모두 하버드대에 보낸 엄마.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혜선(58)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얼핏 보면 좌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그가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냈다.

'콩쿠르 여제'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20대 후반에 반클라이번 콩쿠르 예선에 탈락해 슬럼프를 겪은 이야기, 연주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전화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이야기, 스승의 꾸지람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른 후 최연소 서울대 교수가 됐지만 10년 만에 학교를 박차고 나온 이야기, 그렇게 돌아온 미국에서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두 아이를 길러낸 이야기가 빼곡히 담겼다.

그는 30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다"라며 "시간 순으로 글을 쓰지 않은 것도 독자가 이 글을 자서전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독립된 이야기 하나하나를 읽고 무언가 공감하거나 사소한 영감이라도 얻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서전은 위대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시종일관 겸손했지만 클래식 팬이라면 누구나 그가 거장이라는 것을 안다. 백혜선은 1980~1990년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피아니스트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내 인생에서 백혜선 선생님만큼 동경했던 피아니스트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백혜선은 1994년 29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의 자리에 올랐다. "동양인 여자가 연주자로 나오면 청중들이 다 빠져나가던 시절"이었다. 백혜선은 "당시 연주했던 그랜드홀에서 연주를 마친 뒤 박수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고 당시를 벅차게 회상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연합뉴스

"연주실력 하나로 승부" 서울대 사표 던지고 미국행

그는 서울대 교수에 임용된 1994년을 "인생 2기가 시작된 때"라고 정의했다. 당시 나이 29세. 20대 초반부터 주요 콩쿠르를 석권하며 주목받았던 그의 커리어가 정점을 찍은 시기다.

그는 "서울대 교수가 됐으니 인생 다 풀렸다고 생각하고 10년을 안주했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서울대 교수,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라는 '계급장'을 떼고 연주 실력 하나 만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기어이 서울대에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을 때 그는 40세였다.

계급장을 뗀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부침도 겪었다. 그는 "지방 연주도 마다치 않고 다녔지만 동양인 연주자로서 한계도 있었고, 아이 둘을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미국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클리블랜드 음대 교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아이들이 있는 뉴욕과 직장이 있는 클리블랜드를 일주일에 절반씩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한국을 찾아 연주회를 열었다.

58세의 나이에도 왕성히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4월 리사이틀과 11월 인천시향과의 브람스 협주곡 1·2번 협연으로 국내 팬들을 만난다. 그는 "젊은 연주자들과 힘을 겨룰 수는 없지만 대신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에 대해 말할 때는 임윤찬, 손열음, 조성진을 언급하며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음악적 좌절이 더 심하게 오기도 한다"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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