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대출 돕고 BBC 회장 됐다?…영국 뒤흔든 '금수저 인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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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리처드 샤프 BBC 회장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개인 대출을 도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사진 선데이타임스 캡쳐

영국 BBC 방송의 리처드 샤프(67) 회장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대출을 도운 대가로 회장직에 올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국 언론과 야당은 샤프 회장이 공영방송사인 BBC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며 맹공세를 펴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정·관계 유명 인사들과의 끈을 자랑해온 그가 인맥 문제로 위기에 처한 모양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의 일요일 판인 선데이타임스는 2020년 12월 작성된 내각부 발 문서를 인용해 샤프 회장을 둘러싼 의혹을 보도했다. 해당 문서에는 사이먼 케이스 당시 내각부 장관이 존슨 전 총리에게 “개인적인 재정 문제에 대해 샤프에게 자문 구하는 것을 멈추라”고 경고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서 작성 시점은 존슨 전 총리가 80만 파운드(약 12억2500만 원) 상당의 대출을 받은 지 2주 뒤이고, 이로부터 2주 뒤 샤프는 BBC 회장으로 발표됐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리처드 샤프 BBC 회장으로부터 개인 대출 관련 자문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존슨 전 총리가 대출받는 데 신용 보증인이 필요하자 샤프에게 자문을 구했고 샤프가 캐나다인 사업가 샘 블라이드를 알려주는 대가로 BBC 회장이 된 것 아니냐는 게 선데이타임스 보도의 요지다. 특히 블라이드가 존슨 전 총리의 먼 친척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보증인 자격이 성립되는지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공영방송사인 BBC의 회장 자리는 총리의 선호가 중요하다”며 “샤프는 여당인 보수당에 친화적인 인물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공공인사위원회는 샤프가 인사 규정에 맞게 임명된 것인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두 당사자는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다. 샤프는 “단순히 오랜 친구를 정부 당국자에게 소개해줬을 뿐”이라며 “존슨 전 총리의 대출이나 보증에 직접 관여한 적은 없다”고 했다. 존슨 전 총리 역시 “샤프에게 개인적으로 재정적인 조언을 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BBC는 리차드 샤프 회장이 미국 금융기업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정·관계 인맥이 두텁다고 전했다. 사진 BBC 캡처

샤프 회장은 일명 ‘금수저 인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1980~90년대 무선통신 대기업 ‘케이블 앤 와이어리스(Cable&Wireless)’의 회장이었고, 쌍둥이 여동생 빅토리아 샤프는 고등법원 판사였다. 이혼한 그의 전 부인 빅토리아는 ‘월스트리트의 왕’으로 불리던 존 굿프렌드 전 살로몬브라더스 최고경영자(CEO)의 조카다. 선데이타임스는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샤프는 매력적인 세상에 살았다”고 전했다.

리처드 샤프는 골드만삭스 재직 시절 리시 수낵 현 영국 총리의 상사이기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샤프는 JP 모건에 입사해 8년 동안 일하다가 골드만삭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골드만삭스에서 20년 넘게 일했는데, 한때 이곳 출신인 리시 수낵 현 영국 총리의 상사이기도 했다. 그가 2009년부터 보수당에 기부한 돈은 BBC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인 2021년 초엔 누적 약 40만 파운드 (약 6억1200만 원)에 달했다. 샤프는 존슨 전 총리가 런던 시장일 때 경제 고문을 지냈고, 수낵 총리의 재무부 장관 시절엔 코로나19 피해를 당한 기업의 대출 관련 자문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