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주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이 3·8 전당대회 불출마를 결정하면서 여성 유력 정치인들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당장의 흥망성쇠와는 별개로 여성이 드문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보여왔다는 점만으로도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을 향한 견제 또한 적잖았던 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익명을 원한 비윤계 초선 의원은 27일 “나 전 의원의 불출마를 압박하는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방식이 너무 거칠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13일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외교부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한 뒤 “대통령 본의가 아닐 것”이라는 나 전 의원 주장도 반박했다.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나 전 의원을 향해 “제2의 유승민이 되지 말라”는 말도 했다.
여권 핵심부의 이런 반응에 대해 친윤계 초선 의원은 “나 전 의원이 만약 대표가 됐다면 차기 주자로 올라서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받아야 할 주목도가 그쪽으로 쏠렸을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유력 정치인이 중량감을 키우는 과정에서 내부 반발에 맞닥뜨린 경우는 그 전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영선 전 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의 첫 여성 원내대표가 되면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당시 최대 쟁점이었던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협상을 잘못했다”며 친노무현계가 몰아세웠고, 버티던 그는 끝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엔 장관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지만, 당 주류이던 친문재인계가 “무게감을 키워줄 이유가 없다”며 반발하며 무산됐다. 그는 2019년에서야 비교적 작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의 장관이 됐다.
그는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18.3%포인트 차이로 완패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여성 의원은 “박 전 의원이 당에 지원을 호소해도 지도부는 미온적이었다”며 “박 전 의원이 당선돼 중량감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추미애 전 의원 역시 2016년 여성 최초의 민주당 대표가 되며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섰지만, 현재는 이렇다 할 활동을 못 하고 있다. 2020년 말 법무부 장관을 지내던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을 대선주자급으로 만든 점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친이재명계 초선 의원은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표가 취임한 뒤 추 전 의원에게 윤석열 정부를 향한 공격수 역할을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비관적인 시선이 많았다”며 “추 전 의원도 윤석열 정부 후반기까지는 숨 고르기를 하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20년 7월 민주당이 부동산 3법을 강행 처리할 때 “나는 임차인입니다”는 5분 연설로 화제가 된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도 한때 주목받던 여성 정치인이었지만, ‘라이징 스타’에 머무른 경우다.
윤 전 의원은 유명세를 바탕으로 2021년 7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했지만 한 달 뒤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드러나자 이를 접고 의원직마저 내려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재명 저격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때 비상대책위원으로도 거론됐지만, 현재는 주요 당직을 맡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