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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 5조원, 대기업집단 기준 높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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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다. 이른바 ‘재벌을 견제하기 위한 기업집단 제도’를 대폭 완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제한하는 금산분리 제도 완화도 검토한다.

26일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의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공정위는 학계·법조계·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정책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대기업집단 제도 개선에 착수하기로 했다. 정책네트워크에선 기업집단 제도가 국내 대기업을 과하게 규제하고 있는지 검토하고 이를 어떻게 바꿀지 논의하기로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표적으로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 금지) 규제 완화가 꼽힌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업이나 보험업 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또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회사의 주식을 가져선 안 된다. 이에 대해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금융위원회에선 금융회사가 비금융업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검토 등이 진행되고 있다”며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는 정책네트워크에서 논의할 중장기적 검토 과제다. 이날 구체적인 개정 방향이 나온 건 아니다. 대신 단기적으로 비금융 지주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의 범위를 늘리기로 했다. 현재 비금융 지주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CVC는 창업투자회사·신기술사업금융업자로 제한적인데, 초기 창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도 보유할 수 있게끔 법을 개정한다. 외국인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기 위한 기준 마련도 이어간다. 공정위는 총수 배우자나 2·3세가 외국인이거나 이중국적자인 기업집단이 10곳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집단으로 불리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정 기준 조정도 추진한다. 2009년부터 자산총액 5조원이 넘으면 총수로 지정되고, 각종 공시의무를 부담해야 했다. 공정위는 5조원 자산총액 기준 완화를 본격 검토키로 했다. 2010년 이후 최근까지 국내총생산(GDP)이 약 70% 증가하는 등 경제와 기업 규모가 커지는데 기준은 고정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규제 대상인 기업집단 수는 48개(2009년)에서 76개(2022년)로 늘었다.

자산총액 금액 기준을 상향하거나 GDP의 0.2% 또는 0.3% 수준으로 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공정위는 앞서 상호출자제한기업 자산총액 기준을 2024년부터 GDP의 0.5% 이상으로 바꾸기로 했다. 지난해 지정자료 제출 의무 등을 부담해야 하는 총수의 친족 범위를 축소한 데 이어 대기업 규제 완화에 나서는 셈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선 엄정한 대응 기조를 이어간다.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마련한 데 이어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남용을 규제하는 체계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내·외부 전문가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 개선 필요성 검토부터 시작한다. 모빌리티·오픈마켓 분야에 대해선 직접적인 제재를 예고했다. 당장 다음 달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제재 심의를 앞두고 있다. 오픈마켓의 경우 구글 플레이스토어 제재 절차에 들어간다.

고객을 부당하게 유인하는 다크패턴(눈속임 상술)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연내에 마련한다. 지난해 연구용역을 맡겼고, 최종 점검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 관심이나 선호도에 따라 가격을 변경하거나 가입보다 해지를 어렵게 하는 것 등이 대표적 다크패턴이다. 친환경을 가장해 광고하는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세부 기준도 마련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조사할 때도 사건 처리 적용 규범과 기간, 결과의 수준 모두 예측 가능하도록 공정거래위는 경제사법기관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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