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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크 엄청 튀어요"…다섯달에 한번 꼴 불났다, 구룡마을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5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신주에 불탄 전선들이 널려 있다. 김민정 기자

25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신주에 불탄 전선들이 널려 있다. 김민정 기자

“평소에도 스파크가 엄청 튀었어요.”
화재로 집을 잃은 구룡마을 주민 박모(70)씨가 25일 전신주를 가리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신주 아래로는 불에 타 끊어진 전선 수십 개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박씨는 “20년 전에 여기 왔을 때부터 전신주가 이랬다”며 “조그마한 전기 시설은 알아서 고치는데 (전신주 등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유귀범(73)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장 역시 “전기를 우리가 직접 (배선)해서 쓰는 건데, (건물) 속에 있는 전기선들이 하도 오래되다 보니 낡고 삭았다. 비가 오거나 하면 스파크가 생기고 불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밤에 나이 드신 분들이 연탄불을 갈다 보면 연탄재에 발화가 될 때도 있다”고 했다.

이들의 증언처럼 소방당국은 지난 20일 구룡마을 화재 현장 1차 감식 결과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전 6시 28분 쯤 전기 장치 인근에서 시작된 불이 ‘떡솜’이라 불리는 단열재와 비닐, 합판 등을 타고 급격히 번졌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은 2700㎡, 60세대를 태운 뒤 5시간 18분 만에야 꺼졌다.

지난 20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좁은 골목길에 가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김현동 기자

지난 20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좁은 골목길에 가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김현동 기자

판자촌은 대표적인 ‘화재 사각지대’로 꼽힌다. 누전 등으로 화재가 잦은데다, 가연성 소재로 만든 가건물이 밀집해 있어 불이 났다 하면 대형 화재로 번지기 쉬워서다. 1988년 형성돼 66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구룡마을에선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총 26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소화설비와 소방 진입로 확보는 제대로 돼있지 않아 화재 초기 대응이 어렵다는 점도 판자촌 화재의 특징이다. 2021년 2월 춘천 소양동 판자촌 화재와, 같은 해 1월 원주 명륜동 달동네 화재에선 소방차가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해 진화가 늦어지면서 각각 1명과 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화재로 사라진 집터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화재로 사라진 집터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반복되는 판자촌 화재에도 지방자치단체나 소방당국 등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룡마을의 경우 서울시에서 ‘화재 예방 강화지구’로 지정돼 연 1회 이상 소방특별조사가 실시되고 강남소방서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화기 사용법 등을 교육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대형 화재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유귀범 구룡마을 자치회장은 “(주민들) 나이가 많아 화재 예방 교육을 해봤자”라며 “마을 안에 물탱크를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물탱크가 다 얼어버려 사용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일반 분말소화기를 무거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작은 가정용 소화기를 배부하고, 화재경보기 혹은 전기 불꽃이 발생하면 전기를 차단하는 ‘아크 차단기’를 설치하는 것 등이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소방 관계자는 “소화기 및 화재경보기 지급은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이를 통해) 화재 초기 대응 능력을 향상할 순 있지만, 화재를 막을 순 없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21일 구룡마을 화재 현장을 찾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 사업이 빨리 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며 “(주민들이) 조속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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